신경스님-기도 중에 나타나는 경계에 대한 마음가짐
등록일 : 2020-07-19   
통도사 일산포교당 여래사 일요가족법회 2020-07-19

[감응(感應)과 대치(對治)]

<질문> : “무릇 있는 바 온갖 모양이 모두 허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곧 좋은 경계(=모습)이 있다고 그것을 취하면 단박에 마군이 지은 것(魔業)이 됨을 경계한 것이다. 어찌하여 모양에 집착하고 마음을 일으켜서 미묘하게 감응(冥感)하기를 바라겠는가?

<답변> : 수행력이 지극하면 자연히 성스러운 경지가 스스로 밝아지나니, 왜냐하면 좋은 인연(善緣)으로 생겨난 법은 그러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아가 십지(十地)를 증득하면 지위마다 모두 [어떠한] 모양(相)이 눈 앞에 나타나는데, 그러므로 ‘뜻이 간절하면 가만히 가피를 느끼거니와 도(道)가 높으면 마(魔)도 치성한다.’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혹 선정(禪定)의 염[력]이 미묘하게 들다보면 다른 모양으로도 변해 보이며, 혹 [부처님께] 예불하고 [경전이나 진언을] 독송함에 뜻이 간절하다 보면 잠시 상서스러운 모양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경계(=모습)들이 오직 마음이 일으킨 것(緣塵)인 줄 깨닫는다면 보아도 보는 바가 없으려니와, 그렇지 못하고 만일 이런 것들을 탐하고 집착하여 취한다면 마음 밖에 따로 경계가 생겨서 곧 마군의 일(魔事)를 이루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한 [그러한 모습들을] 버리기에만 몰두한다면 좋은 공덕까지 버려서 닦아 나아갈 문이 없어지고 말 것이니, 그래서 󰡔마하론(摩訶論)󰡕에 이르기를 “진실과 거짓은 오직 스스로의 잘못된 마음(妄心)에서 나타난 경계일 뿐, 그것에 실다움은 없다. 왜냐하면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진실과 거짓 그대로가 모두 진여(眞如)요, 다 한결같은 법신(法身)이라 그 밖에 따로 별다른 경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따로 끊어 제거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지론(智論)󰡕에서는 “버리지 않는 것은 모든 법 가운데 다 수행을 돕는(助道) 힘이 있기 때문이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모든 법의 실다운 모습이 필경 공하고 고요(空寂)하여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자력과 타력은 둘이 아니다.]

<질문> : “마음이 곧 부처”라 하였는데 어찌 굳이 밖으로 구하겠는가. 만일 바깥의 육진(六塵)경계를 인정한다면 자법(自法)은 곧 숨어버릴 것이다.

<답변> : 모든 부처님의 법문이 또한 한결같지만은 않아서 모두가 자력(自力)과 타력(他力), 개별적 특징(自相)과 보편적 특징(共相) 등을 동시에 설하셨다. 이것은 십현문(十玄門)으로 두루 거두어 들이며 육상의(六相儀)로 융통하시기 때문이니, 곧 반연을 따라 나눈 것 같으나 성품을 잡아 항상 합하는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경계를 나타내매 경계 그대로가 곧 마음이요, 객관(所)을 포섭하여 주관(能)으로 돌아가매 타(他)가 곧 자(自)인 것이니, 그러므로 고덕이 이르기를 “만일 마음과 경계가 둘이라고 고집하여도 대상(遮詮)과 언어(言詮)은 둘이 아니니 마음밖에 따로 육진경계(六塵境界)가 없는 까닭이요, 만일 [마음과 경계가] 하나라고 고집해도 대상과 언어는 또한 하나인 것도 아니니 왜냐하면 반연(攀緣)함이 없지 않은 까닭이다.”라고 하였고, 또 󰡔정명경(淨名經)󰡕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건립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지자대사께서 이르시길 “대개 한결같이 무생(無生)을 관찰하는 사람은 다만 내심(內心)의 이익됨만을 믿고 바깥으로 모든 부처님의 위신가피력(威神加被力)은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경에 이르기를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로되 또한 안도 되고 밖도 된다.’라고 하였으니, 곧 안이므로 모든 부처님들의 해탈을 자심행(自心行) 가운데서 구하며, 또 밖이므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반드시 호념(護念)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굳이 안으로만 치우치고 밖의 이익됨은 믿지 않으려 하는가.”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인연을 도와 닦아 나아가는 문(門)이 모두가 온갖 반연으로 생겨난 것이요, 어떤 것도 혼자서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자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면 곧 도와주는 힘(助力)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능히 자력으로 감당치 못한다면 반드시 다른 이의 힘을 빌려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나라의 형벌(官難) 받아 스스로의 힘으로 풀려날 수가 없다면 반드시 힘있는 사람의 구원을 빌리는 것과 같으며, 또 무거운 물건을 운반할 적에 자기의 힘으로만 감당할 수 없을 때엔 반드시 여러 사람들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스스로가 가만히 안으로 자기의 실덕(實德)을 헤아려 볼 것이요, 마침내 나의 집착된 소견만을 고집하여 다른 이까지 방해하여서는 안되리라.

또 혹 치우쳐 말하기를 ‘내력(內力)만이 곧 자성(自性)’이라던지, ‘외력(外力)은 곧 타성(他性)을 이룬다.’하며, 또는 ‘기감(機感)이 서로 투합(投合)함을 곧 공상(共相)’이라 하던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어서 곧 인연이라는 성품(因性)이 없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모두가 집착함에 막혀 얽매인 소견이요, 원만히 이루어진 성품(圓成)에는 들지 못한 견해들이다. 왜냐하면 진실로 참된 마음(眞心)을 깨닫고 본다면 곧 어디에도 얽매여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형상의 진위(眞僞)와 취사(取捨)]

<질문> : 형상이 나타날 때에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어떻게 판단하며, 또한 어떻게 받아들이고 버릴 것인가?
<답변> : 받아들일 때에는 허공을 받아들이듯이 하며, 버릴 때에는 허공을 버리듯이 하라.

<질문> : 오랫동안 수행하였으나 증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왜 그런가?
<답변> : 경전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중생의 마음은 거울과도 같으니 때가 끼어 있으면 모양이 비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행자가 도를 행할 때에 ‘상이 있다(有相)’거나 ‘상이 없다(無相)’는 등에 얽매여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다만 간절한 정성을 다해 근본을 관하여 생각생각에 공덕이 이루어지면 그 모양이 저절로 나타나리니, 그것은 마치 밀실(密室)에 놓인 그릇의 물이 비록 분별하는 마음은 없지만 온갖 모양들이 제 스스로 비추이고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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