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등록일 : 2003-12-23
三日修心千載寶(삼일수심천재보)요 百年貪物一朝塵(백년탐물일조진)이로다.
금년에 들어 많은 큰 스님들께서 원적에 들고 계신다. 우리가 이렇게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원적에 드신 큰 스님의 수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우리의 가슴에 더 크게 와 닿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더 깊고 크고 넓게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목요일에 백양사 서옹 큰스님의 가시는 모습을 뵙기 위해 다비식에 참석을 했었다. 그 날은 많은 눈이 내렸었는데 고적한 산사에서의 그 풍광은 본인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다반사 이거늘 그 폭설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군중이 운집한 연유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을 하실 만큼 확신과 신념을 가지신 큰스님이 육체에 아쉬움이야 남아 있으리 만은,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고 외칠 때 환하게 하늘이 열려 다비장을 비추는 모습을 보면서,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조진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삼일만 간절한 마음으로 도를 닦아도 천년을 덮고도 남을 보배스러움을 지닌다 하였거늘, 다겁생을 닦았을 스님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불가에서 십재일(十齋日)을 두신 이유도 그러한 것이 아닌가 생각 해 보았다.
오늘 라디오에서 서산대사의 선가구감(禪家龜鑑) 말씀이 정리되어 지는 방송을 들었다. 끊임 없이 정리하며 살고 있지만 또 끊임 없이 샘솟는 것을 확인할 때에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본인은 가끔 ‘세상 사람들의 무학자(無學者)란 배운게 없는 사람이지만, 불교에서의 무학자란 배울게 없는 사람을 뜻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무심, 무념 등을 논하곤 한다.
무념(無念)을 세상 사람들은 생각이 없는 이를 가리키지만 불교에서는 생각을 주관적이나 객관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를 일컫는다. 무심(無心)의 불교적 해석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분별하거나 시비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가구감에서 수행자는 세가지를 얼마만큼 가지냐를 두고 도의 척도를 젤 수 있다 하였다. 얼마나 욕심이 많으냐에 따라 얼마나 화를 내는지, 얼마나 어리석으냐에 따라 화를 내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얼마나 신심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생명력을 제는 척도가 된다는 말이 된다. 신심을 화엄경에서는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할만큼 중요한 것이다.
서산대사 역시도 대신심(大信心), 대분발심(大憤發心), 대의심(大疑心)을 낼 것을 강조 하셨었다.
부처님께서 의심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대게는 의심하지 않는게 의심이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요즘 대중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조차도 ‘정말’이라는 말을 접두어 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얼마나 불신이 난무하고 있기에 정말 정말을 외치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서산대사가 말씀하신 의심이란 주관적으로 분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의심, 객관적으로 시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의심을 말하며, 이를 화두참구(話頭參究)라 하였다.
불교에는 여래선이라는 묵조선을 비파사나(vipassana)라 하여 반야지혜를 닦는 방법이 있고, 조사선(祖師禪)이라고 하는 간화선(看話禪)은 사마타(samatha), 즉 선정(禪定)을 통해 참구(參究)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정진을 하게 되면 지혜가 드러나는데 선근이 없는 자가 지혜가 드러나면 간교해 지기 쉬운데 이러할 때에는 지혜 닦음을 놓고, 내관사유하는 선정을 닦아 교만심과 간교함을 버리는 공부를 하라. 또 선정삼매로 판단이 서지 않을 때에는 선정삼매를 놓고 반야지혜를 닦으라.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버리는 공부를 하라.” 하셨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의심이 불신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라면 우리가 간화선에서 참구해야 할 의심은 주관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의심, 마치 분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현장에서만 그 본질의 본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달에만 큰스님들이 여러분 열반에 드셨다.
그 중 통도사의 월하 큰스님의 다비식에서는 빛으로 나투시는 방광(放光)이 여러 차례 나타 나는 등 여러가지 과학으로는 설명이 되어지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 났었다. 또 백양사의 서옹 큰스님의 다비식에서도 보여진 현상들을 보며,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다시한번 하게 되었다.
삶이 괴로운지 즐거운지 물어보니, 혹자는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고 대답하였는데, 즐겁다 괴로운 것이 좋은지, 괴롭다 즐거운 것이 좋은 것인지 깊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이동 보광사라는 절에 정일 큰스님이 계시는데, 뇌에 혹이나 쑤시고 아프셔서 병원에 가셨는데, 수술을 하여야 하는데 힘든 수술이라 성공확률이 극히 낫다고 하였다.
스님은 큰 결심을 하시고 수술을 하기로 맘을 먹으셨다 한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는데, 스님께서는 마취도 체 덜 풀린 상태에서 수술에 임했던 의사 선생님 들에게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며 수술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 알고 계신 듯이 말씀을 하셨다 한다.
수술중에 유체이탈을 하셔서 수술하는 과정을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면 설명되어지기 힘든 일인 것이다.
또 몇해전 일타스님 께서 삼성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어 문안차 찾아 뵌적이 있다. 조금 회복이 되시고 나서 말씀을 하시는데,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계실 때에 있었던 일들을 다 직접 보고 들은 듯 훤히 알고 계셨다.
98세에 열반하신 고송 큰스님께서 96세 되시던 해에 설법을 청했을 때에, 법상에 오르셔서는 인연이 있어 찾아온 이들 이므로 불자들과 스님들을 하나 하나 살펴 보시고서 ‘인생은 참 짧더라’는 한 말씀을 하시고 내려오셨다고 한다.

자유인이 되지 못하면 위대해 질 수 없다. 위대하지 않아도 자유인은 될 수 있지만, 참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은 위대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서옹 큰스님의 좌탈입망 하시던 모습과 다비식날 하염없이 내리던 함박눈, 월하 큰스님의 다비식날 늦은 밤 촉촉히 내리던 비에 감격을 느끼며, 본인도 자유인이 되고자 노력해야 겠구나 생각 하였다.
부처님은 십호(十號)를 가지고 계신다.
진리에서 오신분(如來), 존경받고 대접받을 만 한 분(應供), 바른 지혜를 갖추신 분(正遍知), 아는것을 실천하신 분(明行足), 고통의 바다를 건너신 분(善逝), 세상일을 잘 아시는 분(世間解), 더없이 훌륭한 분(無上士), 중생의 잘못됨을 항복받고 잘 살아 가도록 길들이는 장부(調御丈夫), 하늘이나 인간 세상의 큰 스승(天人師), 진리를 깨달은 분(佛), 세상에서 가장 높고 수승한 분(世尊)이시다.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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