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나
등록일 : 2004-01-26
우리가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내관사유(內觀思惟)를 하게되면, 나는 누구인가? 나를 바라보는 나는 또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부처님이시여 우리들에게 부처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고 여쭈어 보았을 때, 부처님 께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라고 대답하셨다.
본인이 강의를 할 때에도 이런 말을 종종 전한적이 있다. ‘영혼의 세계는 없으나 있고, 마음은 있으나 없다.’ 그런데 이런 말에 어떤 이는 수긍을 하지만, 어떤 이는 당혹해 함을 본다.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열매를 따면 씨앗의 종자를 삼을 수 있고, 씨앗을 종자로 삼아서 뿌리고 가꾸면 열매를 맺지만, 씨앗이라 하여 모두 열매를 맺거나 싹을 틔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움을 틔워서 열매를 맺는 수고로움은 농부의 몫인데, 그 농부의 역할을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승, 환경, 도반, 수행증진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결실을 맺는 것을 부처 성품이 있다고 하고, 열매라고 다 씨앗의 종자가 되지 아니함을 보기에 부처 성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우유를 이용하여 요구르트, 치즈, 버터 등을 만들 수 있다. 부처님 께서는 “우유 속에는 요구르트도 치즈도 버터도 재오도 들어있지만, 치즈나 버터나 요구르트 속에는 우유가 들어있지 않다. 우유 속에 요구르트나 치즈나 버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하셨다.
영혼의 세계는 없는데 있고 마음의 세계는 있는데 없는 것은 나를 알아보는 나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풀과 물 속에 우유성분이 있기는 하지만 없다고 한다면 그릇된 것이다. 있다고 한다면 집착한 것이요, 없다고 한다면 허망한 것이다.” 있는 것도 나요, 없는 것도 나 이다.
“나의 존재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습니까? 이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는 있고, 죽은 자는 없느니라.”
“그렇다면 부처님이시여 나는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생종하처래(生從何處來) 사향하처거(死向何處去)” – 나는 어느 곳을 쫓아서 왔다가 어느 곳을 쫓아서 가는가 –
부처님께서는 “곡식으로부터 왔다”고 대답 하셨고, 또 “곡식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라는 질문에 부처님께서는 “큰 지수화풍을 의지해서 왔다.”고 하였다.
큰 지수화풍이란 지구의 대기권 내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또 “큰 지수화풍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라고 여쭈자, 부처님께서는 “허공으로부터 왔다”고 대답하셨다.
또 “허공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라고 여쭈자, 부처님께서는 “오고 감이 없는 곳으로부터 왔다.”고 대답하셨다. “그러면 오고 감이 없는 것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하고 여쭈자 “자연으로부터 왔다.” 또 “자연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라고 다시 여쭈자 “열반으로부터 왔노라.”고 대답 하셨다.
지구도 언젠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전체가 용암이 되거나 가스로 변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 에서 도출되어 나오면 다시 은하나 하나의 별 등으로 나타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째서 우리는 탐진치(貪嗔癡) 삼독이라는 나쁜 감각에 의해서 솟구쳤다가 잠겨버리고 또 솟구쳤다가 잠겨버리는 인생을 사는 것일까?
“불자들아 선한 마음이 없는 연고며, 나쁜 짓을 항상 행하는 연고며, 다스릴 것을 닦지 아니함으로 잠긴다 하느니라.”
우리가 나쁜 감각에 의해서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육도(六道)를 윤회하는 것을 잠긴다고 표현하였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항상 잠기고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사는가? 에 대하여 둘이 있다고 하셨다.
“믿지 않으면서 항상 잠겨 있는 이가 있다.” 고 하셨다. 이 세상에서 함께 하기가 힘든 이가 바로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믿음은 생명력이다. 신심이라는 것 만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 자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생사을 위해서 보시와 계율과 선한 일을 닦으면 항상 잠겨있다 한다. 네 가지 선한 일이 있으면 나쁜 과보를 얻는데,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면
그 중 하나는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양을 위해서 무엇을 가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이에게 가까이 하기 위해서 행하는 일이며, 네 번째는 좋은 세상을 위해서 행하는 일이다.”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가르침을 듣고 신심을 내면 나올 수 있고, 욕계, 색계, 무색계, 육도를 윤회하는 것을 좋아 한다면 빠져 있게 된다.

“불자들아 무슨 인연으로 나온다 하는가
이 가르침을 듣고는 나쁜 법을 여의고 선한 법을 닦으므로 나온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비록 믿으나 구족하지 못하니 무슨 인연으로 믿음이 구족하지 못한가
이 사람이 비록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아니하는 대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믿지마는 부처님의 몸은 무상하고 남이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여래에게는 두 가지 열반이 있으니 하나는 하염이 있음이요 또 하나는 하염 없음이라
하염 있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고 하염없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
비록 부처성품이 중생에게 있음을 믿으나 반드시 온갖 중생에게 부처성품이 다 있는 것은 아니라 하나니 그러므로 믿음이 구족하지 못하다 하느니라”
열반이라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자리도 하염있는 자리가 있고 하염없는 자리가 있다고 하신다.
큰 보살은 이 몸이 무상하고 허망한 몸 인줄은 알지만 비록 허망하다 할 지라도 이 몸을 보살피고 기르고 갖추어 나가는 연유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업도 악업도 이루어 지고, 여기서 선업을 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허망하지만 이몸을 보살핀다고 하였다.
중생도 이 몸을 보살피기는 보살피지만 이 몸속의 나쁜 감각만 자꾸 드러내려 하기 때문에 잠겨있는 인생을 살게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를 다른 곳에서 빌려 올 것이 아니라 늘 항상된 나, 늘 즐거워 하는 나, 참 나, 깨끗한 나 모두 나에게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있는 이도 있고 없는 이도 있다고 하였다. 있는 이가 되기 위한 처음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한가지는 믿음이고, 또 한가지는 구함이다.
믿음은 있는데 구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믿음이 있는 이는 발심해야 하며, 정진해야 하며, 회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구족함이 없다는 것은 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은 생명력인데, 구하고자 하는 발심을 하여야 한다. 마음을 일으켜서 기도하고, 정진하고, 참선하여야 한다. 그런 진지한 삶을 살아야 한다. 구함이 없는 삶은 완전하지 못하다.
또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들음으로부터 생긴다. 또 하나는 생각함으로부터 생긴다.
또 믿음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도가 있음을 믿고, 도를 얻는 이를 믿음이다.
어떤 우유도 치즈 만들 수 있고, 요구르트를 만들 수 있듯이, 또 일상적인 삶 속에서 받아들이는 가르침이 물이요, 풀이요, 곡식임을 통해서 잘 사유해 들어가는 것이 부처성품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있다고 고집하면 집착이 되고 없다고 내뱉으면 허망함이 되는 것을 잘 생각하며, 스스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해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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