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히 여겨야 할 나
등록일 : 2004-05-03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진 이여 내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지 마시오, 내 말을 분석해 보아서 옳다고 이해되거든 그 때 받아들이시오.”
어제는 대만의 불광산사의 성운대사의 방문이 있었다. 본인이 20대 후반에 불광산사를 방문 하였을 때 이미 큰 가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때의 모습이 본인의 포교정신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했었다.
성운대사는 달라이라마와 함께 세계 불교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대만 초기 홀로 열악한 환경에서 포교지와 테잎 녹음물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베포하며 포교를 시작했다 한다. 그러던 성운대사는 중국으로부터 부처님의 불지사리를 대만으로 모셨는데, 불지사리의 친견을 도왔던 봉사요원이 한달에 20만명에 이르렀다 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 어디든 화교가 있는 곳이라면 불광산사의 절이 있다고 한다.
초기 리어카 하나로 시작했던 포교가 지금 이만큼 엄청난 홍법을 했다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일이라 생각한다.
스님은 이제 연세가 80에 가까우시고 또 젊은 시절 몸을 아끼지 않고 포교를 하셔서 몸이 많이 불편하시지만,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실 수 있는 그 마음이 보살도의 실천이라 생각하며, 이를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불자들아 용한 의원이 여덟 가지 의술을 잘 알면서 병 난 사람만 보고 문벌과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는 것을 보지 아니하고 모두 다스리거늘 세상 사람이 훌륭한 의원이라 하나니 부처님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번뇌의 병이 있는 것만 보고 문벌과 단정하고 추한 것이나 재물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고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법을 말하거든 중생들이 듣고는 번뇌의 병이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보살을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누구를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들은 너무 많은 것에 속고 있다. 그러나 살면서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러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다.
만약 우리가 나보다 더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부처님이고, 보살이고, 선지식일 것이다.
살면서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그 마음을 확인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마음이 확인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결코 인색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며, 인색한 마음을 자신에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상대에게도 너그럽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어느 스님이 참으로 공감되는 말씀을 하였다.
칼이야 어떤 종류의 칼이든, 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음식을 만들 수도, 사람을 살리는 수술용으로도,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
칼 자체에 깨끗함과 더러움이 어디 있으며, 좋고 나쁨이 있겠는가, 칼을 사용하는 사람의 행동이 그 칼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드는 것이다. 사람도 낱낱 사람마다 어찌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사람이 어떤 행동과 생각과 실천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도 세상과 함께 어우러짐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보이는 것과 같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꼭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아주 국소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며, 듣는 것만 듣는 것이 아님을 살면서 보면 충분히 인식되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를 부처님께서는 거울을 들어 일러주셨다.
“불자들아 밝은 거울로 사람의 얼굴을 비추면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법을 듣는 거울도 그와 같아서 누구나 비추기만 하면 선한 일이나 나쁜 일이 분명히 나타나고 가리우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말하기를 법을 들은 인연으로 번뇌가 일어나지 아니함에 가까워 진다 하였느니라.”
법을 들으면 신심이 생긴다. 신심이라는 것은 단순히 표현하자면 생명력이고, 포괄적으로 생각하자면 힘이다.
사람의 인생을 1기 인생, 2기 인생, 3기 인생으로 나누었을 때, 1기 인생에서 2기 인생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 기업을 보아도 한 업체가 안팎에서 휘몰아 치는 바람을 30년 세월 동안 버티어 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잘못 되는 업체나, 잘못 되는 인생은 다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바람에 내몰림 당했기 때문이다.
행복도 불행도, 성공도 실패도 결국 중심은 나에게 있는데, 조화롭게 이루어 져야 할 몇 가지 어울림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밝고 깨끗한 거울로 비추어 보면 다 보이지만,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거울을 통해서 보면 좌와 우가 바뀌어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 모습이 온전한 내 모습은 아닐지라도 밝은 거울을 통해서 보면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가려있던 모습 때문에 다른 모습이 보였다면 그 가려있는 불필요한 부분들을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이란 이처럼 법을 듣고, 기도하고, 수행정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을 듣는 것을 법사스님으로부터 법사스님이 말을 하면 그것을 듣고 사유하고 생각을 모아서 행동하는 것으로만 사유하지 말아야 한다. 눈으로도 듣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님의 관(觀)자는 볼 관자 이고, 팔정도의 정견은 볼 견(見)자이며, 간화선(看話禪)의 간(看)자는 볼 간자 이다. 하지만 관세음의 관자는 견자와 간자와는 다르다.
정견은 인식기관으로 보는 것이지만, 관자는 그 보는 개념이 인식기관과 밝고 어두움과 대소장단의 상대적인 이분논법으로 이루어지는 현상계와는 상관없이 보고 듣고 관하는 것이다.
법을 듣는 까닭으로 신심이라는 생명력을 얻는 까닭으로 바라밀다를 행하게 된다. 바라밀이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인데 육바라밀에서 지혜가 근본이라 하지만 지혜가 아무에게나 드러나지는 않는다.
여러분들은 본래가 착하다. 본래 착한 이가 바라밀다를 행하게 되면 그는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데 보탬이 되는 모습을 저절로 가지게 된다. 이것이 마치 밝은 거울에 모습을 비치면 저절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불자들아 보살이 생각한 인연으로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가까워진다 하는가. 이 생각으로 마음이 번뇌를 끊게 되나니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항상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욕락(慾樂)에 얽히는 것을 생각하는 까닭으로 해탈하게 되느니라”
인생이란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이다. 태중에 들어서 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일상사다.
가장 사랑하는 이가 본인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함부로 살아서는 안됨을 알게 된다.
욕심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탐진치(貪嗔癡) 때문에 화가나고, 싫고,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번뇌만 끊으면 즐겁고 깨끗한 세상을 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인생이 나의 인생인데,
또 부처님께서는 “인생을 모르고 사는 이여, 그대는 죄업 중에 가장 큰 죄업을 짓고 있구나”라고 하셨다. 모르고 짓는 죄를 용서한다면 그것은 아이일 때 뿐이다.
잘못한 것을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일깨워주지 못한다면 원수라 하였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고, 다니면서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알고 짓는 죄는 참회할 수 있다. 모르고 짓는 죄는 계속해서 그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소중하고 귀한 인생이라 한다면 살아있는 그 시간에 귀하고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소중한 인생을 살았고, 귀한 생명을 유지시켜 온 것이다. 삼독(三毒) 오욕(五欲) 그 무엇이건 중생들 경계에서 보면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밝고 깨끗한 거울을 통해서 보면 사물이 보이듯, 의사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듯,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심이 생기고 그 생명력으로 소중한 내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도 부처님 같은 인생을 살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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