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 중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을 명제 삼아 그 해답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본인은 부처님오신날 기도를 마치고 티벳의 서쪽에 있는 수미산에 다녀왔다. 철이 들고부터는 3일을 넘기지 않고 면도를 하였고, 10일 정도에 한번씩 삭두를 하여왔었는데 이번 순례기간 보름 가까이 면도를 않다가 거울을 보았을 때, 봄인가 싶으면 가을이 듯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세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동안 본인은 나이가 50이 넘었건만 그것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희게 세어있는 수염을 보면서 이미 50이 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 때에 ‘있는 현상 그대로를 인정하는 우리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그 무엇인가에 집요하게 집착하며 살고 있었다. 집착하는지도 모르고, 치우친지도 모르고, 얽매인지도 모르고, 빠진지도 모르며 살아왔었다. 살아오면서 자기 스스로의 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존재 안의 깊은 곳에서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의 ‘나’와 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나’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순례에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 중 하나는 첫날부터 4,000m고지로 올라가고, 6,000m까지 오르게 되는데, 불안한 대기로 우박과 눈으로 고생을 하였고, 기온은 영하 10~20도 안팎을 오갔다. 인천에서 국제선을 타고 떠날 때 비행기 속에서 관찰한 바로는 10,000m 상공을 나는 동안 기온은 영하 40~4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이 온도는 적도이든 극지방이든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구름 위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대기이다. 그렇다면 허공의 온도는 같은 것이다. 지표면에서만 춘,하,추,동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또 수미산을 돌 때 낮에는 옷을 껴입어도 덥지가 않고, 밤에는 많이 껴입어도 추웠다. 그러다 땀 때문에 웃옷을 하나 벗어 손에 들었더니, 가벼운 옷이건만 그 옷은 천근만근 무게의 짐이 되었다. 중생들은 벗어야 하고, 비워야 하고, 놓아야 한다지만, 부처님이나 보살은 벗는게 아니며 입으면 내 몸이 되는데, 벗으면 짐이 되는 이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보살도요 보살행이며, 어버이가 가정에서 자식에게, 어른들이 사회에서 해야 할 몫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하리니, 하나는 선정(禪定) 이요, 둘은 지혜(智慧)니라. 선남자여, 왕골을 비빌 적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 을 닦는 일도 그와 같느니라. 선남자여,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적에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빠지기가 쉽듯이 보 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때묻은 옷을 빨 적에는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하여지나니,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느니라.
이 부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또 어떻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인가, 또 왜 우리는 흔들리고, 왜 우리는 타락하는 것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고 기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하는 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자비심이다. 우리는 서로의 일을 충분히 살피고 가름해서 보듬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불자들이 이 시대에 해쳐 나가야 할 당면 과제일 것이다. 만일 내가 노여워하고 성내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번뇌를 극복할 수가 없다. 또 그런 이는 진실한 삶을 살수가 없음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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