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마음이란 무엇인가
등록일 : 2004-10-26
“참된 성품이란 어떤 것인가? 참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진정으로 내 모습을 지니고 사는 그 모습이겠지만, 능엄경에서는 부처님의 혈족인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간청하고 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가장 나이어린 동생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에 힘입어 출가하였지만 여전히 부처님만 믿고 설법을 듣기만 했을 뿐 번뇌망상에서 벗어난 경지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번민하고 망상과 유혹에 떨어지고 맙니다. 이는 진실로 참 마음이 있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바라옵건데 세존이시여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선정삼매에 대한 법문을 내려주시고 성불할 선근이 끊어진 중생으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여의게 하여 주십시오.”
선정삼매란 지혜있는 사람이 내관사유하여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성품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열반경에서는 중생들은 오관(五官)을 잘 가누어야 한다고 하셨다. 범부 중생들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인식기관인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정신(意)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인식기관이 인식대상을 자꾸 쫏아다닌다. 그것을 육진경계((六塵境界), 혹은 육경(六境)이라고 한다.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이 그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눈으로 보고 똑같이 아는 것은 아니다. 육안(肉眼)으로 보면 눈이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으며,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X선이나 감마선 등도 있다. 그런데 자기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인식작용이라 하여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이라 한다.
오늘은 이 오근(五根)과 오경(五境)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행동이 각기 달라서 서로 상대의 단점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사람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선행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불자들아 범부중생들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오근(五根)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므로 세가지 누가 있으니 나쁜 짓에 끌리어 선하지 못한 곳에 이르느니라.
불자들아 마치 나쁜 말이 성질이 고약하여 말 탄 이를 끌고 험악한 곳으로 가듯이 오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한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선한 길을 여의고 나쁜 갈래고 가는 것이며, 나쁜 코끼리의 길들지 못한 것을 타면 뜻대로 가지 아니하고 도시나 촌락을 떠나서 빈 벌판으로 가게 되듯이 오근을 잘 거두어 잡지 못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열반의 도시를 여의고 나고 죽는 넓은 벌판으로 가게 되느니라.”
중생이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근본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촉감을 느끼는 이 다섯 가지 분별식이다.
눈으로 보는 것을 제대로 본다면야 좋겠지만, 그것의 여의치 못하다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눈을 감아서라도 보지 말아야 하며, 듣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귀를 막고서 라도 듣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몸은 그림자와 같아서 업연(業緣)에 따라 의지를 드러내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 것이 누적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스스로 긍정적인 사고와 확신에 찬 행동과 신념을 가지고 살 때 그 에너지는 나로부터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질 것이다.
인식할 수 있는 기관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눈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아보는 등으로 판단을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배움은 먼저 이해되어야 하고, 그 다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차라리 조금 배워서 그 도리를 이해할지언정, 많이 배우기만 하여 그 뜻을 모르고 실천도 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중생들의 마음은 분별식심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거울과 같다. 거울에 수증기나 먼지가 끼어 내 모습이 비추어 지지 않았을 때, 어리석은 자는 내가 없어졌던지, 거울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지혜 있는 자는 그 거울을 깨끗이 닦아내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자들아 범부 중생들은 오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서 항상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해함이 되나니 마치 원수가 선한 사람을 해치는 듯 하느니라.
불자들아 범부들은 오근을 거두어 잡지 못하여 오진으로 달아나나니 마치 소 먹이는 사람이 잘 수호하지 못하면 남의 곡식을 먹게 되듯이 범부 중생들도 안이비설신의를 거두어 잡지 못하면 항상 여러 세계에 있어 고통을 많이 받게 되느니라.”

통도사의 방장스님이셨던 월하 큰스님께서 이 생을 마감하시기 몇 달 전부터 하지 않으시던 일을 하셨었다. 그것은 늘 방안에 금강경을 틀어 두셨던 것이다. 선지가 밝으신 큰스님께서 그 내용을 몰라 듣고 계셨을 리는 없건만 늘 듣고 계셨었다.
사람이 임종을 맞이 할 때에 가장 마지막에 닫히는 것이 바로 귀이므로 임종 직전에 있는 이에게 염불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은 일이다.
마음은 놓아두면 후회할 일들만 생기게 된다. 교만하고 방자하면 그 생각이 천만가지 어려운 일을 불러들이게 된다. 절구통으로 떡을 칠 때 잘 반죽이 되도록 떡을 치는 사이 사이 계속 반죽을 모으듯이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오관에 의해서 어디론가 뻗치는 그것을 마음을 통해서 끈을 놓지 말고 품으로 안아야 한다.
이를 비추어 볼 때 신근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부처님 말씀 중에
“장하고 장하도다 불자들이여, 만일 그대가 신근을 여의였다면 마음이 용렬해서 늘 근심하면서 공덕행을 갖추지 못하고 살 것이다. 본래 착한 그 뿌리를 놓쳐버렸다면 부지런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진 할 수도 없게 되므로 집착하게 되고, 조그마한 선행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훌륭한 행원의 방편을 일으킬 수 없고, 선지식에 섭수되어 보호 받지 못하고, 여래의 호념하시는 바를 읽지 못하며, 이러한 마음가짐과 이러한 경계를 분명히 알 수 없게 되면 우리는 그 나쁜 말이나 나쁜 코끼리나 나쁜 소처럼 주인의 지침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떠돌아다니는 구천의 영혼 같은 인생이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염불삼매를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에, “마치 한 사람은 전심전력을 다해서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이고, 보아도 보지 못한 것이다.”
시방여래가 중생을 생각하는 것은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듯 하는데, 자식은 바깥으로 도망만 다닌다면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식이 어버이 생각하기를 어버이가 자식을 생각하듯이 한다면 어버이와 자식이 여러 생을 지내도록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중생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우리는 늘 부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향을 가까이 하면 향내음이 베듯이.

달마대사께서는 “마음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마음 씀씀이를 본다면 마음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마음을 잘 쓰면 우주가 다 그 안에 들어오고도 남고, 잘 못 쓰면 바늘도 용납 안 되는 것이 마음이다 보니 실체가 있다고도 할 수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텅 비어있어도 가득한 도리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요즘 어렵다고들 하지만 어려움에 떨어지지 말고 더 기운을 차려 용기백배하여 신심과 원력의 작용으로 백천간두에서 진일보(伯尺竿頭進一步) 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드러내어 가족과 이웃에게 그 기운이 전달 되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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