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과거 또 과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계시던 그 시절에 이천육백년전에 룸비니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출연하셨듯이, 그 과거 시절에도 부처님이 계셨으니 석가모니 부처님이었다. 그 부처님이 사라쌍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경을 설하실 때에 얼마나 그 가르침이 거룩하고 성스럽고 가슴에 와 닿았던지 그곳에서 원을 세우셨다. “나도 훗날 깨달음을 얻으면 이름을 석가모니 부처님이라 하리라.” 그것이 수천년 혹은 수억만년 어쩌면 시간으로 헤아릴 수 없고 가름할 수 없는 그 후대에 인도 가비라국에 태어나서 수행정진을 통해서 우리에게 팔만장경의 가르침을 설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그런 부분을 보면 이미 인행시에 공부를 다 하신것이다. 깨달으신 분의 말씀이 진리의 실상인 생명을 드러내시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깨달았다고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백팔배를 처음 하는 사람은 호흡도 가쁘고 다리도 아파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꺼번에 삼천배, 만배, 삼만배를 올리기란 어려운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삼배만 하여도 일년이면 천배가 넘고, 하루에 삼십배를 하면 일년이면 삼천배가 넘는 것이다. 본인은 여러분들에게 생활불교인의 자세가 시간에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사람이다. 기계도 많이 사용하면 닳아지게 된다. 그와 같이 세포도 소멸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생성되는 숫자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노, 병, 사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경고성의 말씀을 하신것이 있다. “불자들아 중생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둘은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의 힘으로 지옥으로 받을 중대한 업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을 가벼운 업을 지옥에서 무겁게 받기도 하느니라.” 불교인이 지켜야 할 두 가지 골격이 있다. 하나는 불, 법, 승 삼보에 돌아가 의지할 것, 또 하나는 오계를 받아 지닐 것.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면 안된다.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를 믿고 육도(六道)를 윤회한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일타스님께서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일주일 넘게 혼수상태에 계셨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다 보이고 들리시더라는 것이었다. 또 본인의 조부님께서 50세 즈음에 돌아가셔서 5일장을 치르게 되었는데, 3일째가 되어 입관을 준비하던 중에 긴 숨을 내쉬시며 깨어나셨다고 한다. 그 뒤로 20여년을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 지혜 있는 이는 지옥에서 받을 무거운 업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고, 어리석은 이는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을 업을 지옥에서 무겁게 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음과 지혜로움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옥도 살아 있으므로 가는 것이고, 극락도 살아 있으므로 가는 것이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숨을 거두었던 이가 다시 깨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마전 TV에서 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숨을 거두었다가 다시 깨어난 이들을 인터뷰 한 것을 모은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한 이들은 의학적으로는 뇌사상태에 있었던 그들은 대부분이 그 무엇인가가 나와서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찬란한 빛이 비추이는 곳에서 좋은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아주 자유롭게 몸이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였으며, 다시 돌아왔을 때 몸이 아픔과 고통을 느꼈다고 이야기 하고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거짓된 표현은 죽음이다.” 우리들이 맞이하는 생, 노, 병, 사를 마치 북한강, 남한강 또 나아가 서해, 남해, 동해로 편의상 구분하지만 그것이 구분이 되어 지는 것인가. 또 우리의 삶을 시간적으로 구분 지어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도 그 모두는 나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연기법칙에 의하여 시절인연이 다하여 숨을 거두고 이 몸을 돌려주더라고 자기가 목격한 것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살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 누구도 괴롭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집착하려 하지 말고, 어떤 이치를 취하려고도 하지 말고, 분별심을 내지도 말며, 세상일에 물들지도 말고, 경계를 분별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학문 보다는 신행이라는 공부를 하여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참 수행이란 무엇인가. 참선이 좋지만 참선만 좋은 것이 아니고, 염불이 좋지만 염불만 좋은 것도 아닌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어머니가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을 정리하는 일, 남편을 내조를 하고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일, 부모님께 효순 하는 일 이 모두가 다 공부고 수행인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과거 억겁년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회상에서 서원을 하고 열심히 수행정진을 하신 결과가 2600년 전에 사바세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나타나셨듯이, 우리의 이 인연이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오늘의 이 만남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 마음을 잘 간직한다면 우리의 남은 인생을 쉽게 풀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생활불교인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