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月爲燈燈不盡(일월위등등부진) 이요 乾坤作屋屋無邊(건곤작옥옥무변) 이라 此身隨處生涯足(차신수처생애족) 하니 飢食松花渴飮泉(기식송화갈음천) 이어다.
일월로 등불을 삼으니 꺼지는 법 없고 건곤으로 집을 삼으니 모두가 내 집이네. 이 몸 가는 곳 마다 내 삶이 풍족하나니 주리면 송화를 먹고 목마르면 샘물 마시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 다른 곳에서 보물을 찾으려 합니다. 이렇게 천지로 집을 삼고 일월로 등불을 삼아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 한 물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해서 끝없는 자비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허울만 수행자라는데 매료되어 있지 않은지 잘 살펴야 할 때입니다.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각고의 수행을 하신 게 아닙니다.
나를 밝혀서 무명에 허덕이는 다른 이를 이끌어 가려는 보살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불보살님의 탄식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수행자는 명철한 지혜의 판단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여법한 수행자의 모습인지 스스로를 살피는 것으로 최선을 삼아야 합니다. 타인의 문장이나 말을 쫓아 그럴듯한 말을 주워 새기며 묘한 이치를 터득한 양 우쭐하다보면 헛된 시간만 허비하게 됩니다. 영겁토록 생사를 벗어날 길이 아득하다 할 것입니다.
근본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진여법계라고 하는 보물 창고 속에 살면서도 진귀한 줄 모르고 보배를 찾아 헤맵니다. 어리석음의 가시덤불 속을 휘젓고 다니기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밖으로 광주(狂走)하던 걸음을 멈추고 자성의 거울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구족되어 있는 속에서 부족하다고 허덕이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삼독이라는 지독한 그물을 끊어 버리고 천진자연의 걸림 없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고인의 말씀에 “지난날 깨닫지 못했을 적엔 보배 찾아 나설 때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했었는데 오늘 알고 보니 빠르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고인의 이 말씀을 깊이 새겨서 경책을 삼아야 합니다. 마냥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젊음은 쏜살같습니다. 이것저것 재고 있다가는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대장부의 굳건한 용맹심을 발해서 작은 절개에 걸리지 말고 큰 기틀을 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신심(大信心)으로 우리의 심전(心田)은 아무리 캐내어도 다하지 않는 보고라는 것을 믿을 때 헛걸음을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 믿음을 바탕 삼아 정도라는 길이 탄탄해지는 것이니 잘 살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를 한다면 근본의 매듭을 풀어 참 해제를 해야 합니다. 시작이니 끝이니 하는 것은 근본에 도달하기 전엔 끝없는 연속일 뿐입니다. 풀고 또 풀어서 더 이상 풀 것이 없는 데 이르러야 해제를 한다 하겠습니다.
一切無非佛事(일체무비불사) 어늘 何須攝念坐禪(하수섭념좌선) 이며 妄想本來空寂(망상본래공적) 하니 不用斷除攀緣(불용단제반연) 이어다.
일체 모든 것이 불사 아닌 게 없거늘 어찌 생각을 거두어 좌선만 하려하는가? 망상이 본래 공하여 적적한 것이니 인연들을 애써 끊으려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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