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간학이다
등록일 : 2005-01-10
출가한지 꼭 40년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 양재동의 구룡사 주지를 맡고 대중들과 어울린 지도 20년이 되었다. 그 동안 깨달은 바가 있다면 불교라는 종교가 담당해야 할 몫은 윤활유의 역할과 비타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불교가 윤활유와 비타민이라면 교단의 일원인 스님의 역할 역시 윤활유의 역할과 비타민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그 몫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몫 역시 윤활유의 역할과 비타민의 역할을 할 때 그 상대는 활력있는 가치를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여러 사찰을 이루고 그 속에서 대중들과 어울리는 동안 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질문을 하는 것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동안에 그런 많은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그에 대해 일관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시대의 불자들의 목마름이 그만큼 간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에 새로이 이루어 낼 원각사에 방문하여서 그곳 불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하였다.
“본인은 원각사의 기초를 다지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머슴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왔다. 나는 주인이 아니다. 이곳의 주인은 지금 자라고 있는 우리의 2세, 3세이다.”
본인은 늘 중이고 싶어한다. 중이란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하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다.
또 본인은 늘 일관되게 놓치지 않는 끈이 하나 있다.
‘이 일을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결정해서 하셨을까? 이 일을 돌아가신 은사스님 이라면 어떻게 결정을 내리셨을까? 또 작년에 열반하신 전 통도사의 방장스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하셨을까?’
결론이 서지 않으면 통도사로 달려가서 어른스님께 말씀 드려서 칭찬도 받고, 꾸지람도 듣고, 자랑도 하면서 20여년을 살아왔다. 통도사에 큰스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고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다짐하는 것은 금생에 살아오면서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에 더 노력해야 하겠지만, 다음 생에 몸을 바꾸었을 때에 금생에 살면서 느낀 아쉽고 미진하고 부족한 부분을 붙들고 가서 다음 생에는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선근과 선지를 잃어버리지 않고싶다.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에 금생에 깨달음은 얻지 못할지라도 금생에 닦고 닦고 닦으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흔들림 없는 삶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과학문명 속에서 인터넷의 사이버공간을 볼 때 이것은 가상의 세계이므로 허구이지만 중생들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현실이 되어버린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것이 결정문이다.
그러므로 그것 때문에 변명하거나 옹색한 생각을 되뇌일 것은 없다. 그 부분만은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싶다.
불사의 현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본인의 생각에는 불사란 중생을 위하는 일이다. 중생이란 사람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이렇게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삶이 불사이다.
얼마전 본인 모친의 팔순을 맞아 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자식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셨다 한다. 동남아쪽의 지진 해일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의 고통이 남의 일 같지가 않으니 잔치를 할 돈을 나에게 준다면 그 돈을 성금으로 내고싶다고 하셨다 한다. 본인의 모친 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씨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느 독일인이 성금모금에 동참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자신들도 2차 대전을 겪으며 엄청난 괴로움과 고통을 겪어보았기에 이러한 성금에 당연히 참여하여야 하며, 다른 부분을 아껴서라도 동참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세상은 결코 험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살맛 나지 않는 세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들여다 보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인연들이 값지고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토양을 다지는 이들이 우리들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주고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삶이 바로 부처님의 제자들이 인간학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포근히 감싸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자들아 자세히 들어라 내가 그대들에게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려고 크게 괴로울적에 일가친척들이 둘러앉아 울고불고 슬퍼하거든 그 사람이 공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록 다섯 가지 정식이 있으나 깨달음이 없고 팔다리는 떨리어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며 몸은 식어가고 더운 기운은 다하려 하거든 먼저 닦아 익혔던 선과 악의 과보를 보게 되느니라.
불자들아 해가 지려 할 적에는 산이나 언덕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나타나고 서쪽으로 기울어질 이치가 없느니라. 중생의 업과 과보도 그와 같아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없어질 때에 저 색수상행식이 계속하여 생기나니, 마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면 어둠이 나타나는 듯 하느니라.”

“불자들아 마치 송아지가 태어나면서 문득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는 누가 가르친 적이 없으며 비록 잠깐 잠깐 멸하지만 처음은 배가 고팠으나 나중에 배부름과 같으니라. 이러므로 서로 같지 않음을 많이 알지니 만일 서로 같다면 마땅히 다른 데서 나지 않으리라. 중생의 도 닦음도 그와 같아서 처음에는 증장(增長)하지 못하지만 오래 오래 닦으므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능히 깨뜨리게 되느니라.”

현상계에서는 모든 것은 반복되어진다. 우리가 TV를 볼 때 그 화면은 1초에 60회 깜박이고있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 앞이 보이지 않지만 가리고 가리지 않음을 빨리 반복한다면 보는 것에 전혀 지장이 생기지 않음을 본다. 중생들의 번뇌, 망상, 지혜, 밝음, 어둠, 선, 악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일으키는 파장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삭히면 믿음과 신뢰를 낳고, 세상을 썩히면 불신과 의심을 낳는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여기서도 끊어지고 끊어진 파장이 이어지는 것이 지혜를 증장하는 것으로 할 것이냐, 번뇌가 이어지는 것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진로는 달라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전한 인간학이므로 그 가르침을 통해서 너그럽고 따뜻하고 편안한 관계 속에서 우리 사바에서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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