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
등록일 : 2005-04-11
오늘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같이 공부했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살아야 할 것이다.
옛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마음속에 의심과 두려움을 없애기만 하면 모든 사물들은 있는 현상 그대로 다 볼 수 있으며 스스로 지어낸 환상이나 그림자 뿐임을 알게 될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늘 가슴알이를 하면서 두려움과 고달픔으로 범벅된 인생을 살게된다.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라 하였다.

“불자들아 진실로 불법에는 성문소승(聲聞小乘)이나 연각중승(緣覺中乘)이나 보살대승(菩薩大乘)이라는 삼승(三乘)이 없건마는 전도된 마음으로 삼승이 있다 하며, 실상의 도리는 한결같이 진실하여 헛되지 않건마는 뒤바뀐 마음으로 한결 같은 실상이 없다 하느니라. 이 세가지 나쁜 감각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항상 꾸중하는 것이며, 이 세가지 나쁜 감각은 항상 나를 해롭게 하고 혹은 다른 이도 해롭게 하느니라.
불자들아 이 세가지 나쁜 감각이 있으면 온갖 나쁜 일이 항상 따라오는 것이며, 이 세가지 나쁜 감각은 곧 세가지 속박이어서 중생의 그지없는 나고 죽음을 계속하게 하나니, 보살마하살은 항상 이렇게 세가지 나쁜 감각을 관찰하느니라. 보살이 어떤 때에는 무슨 인연으로 탐욕의 나쁜 감각을 내게 되더라도 잠자코 받지 아니하나니 마치 단정하고 깨끗한 사람이 모든 더러운 것을 받지 않는 것 같으며, 뜨거운 구슬은 아무도 받으리 없는 것 같으며, 바라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 같으며, 배부른 사람이 나쁜 음식을 받지 않는 것 같으며, 전륜왕이 전다라들과 한평생에 함께 앉지 않는 것 같아서 보살마하살이 세가지 나쁜 감각을 미워하여 받지 않고 맛보지 않음도 그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내가 복밭인 줄로 알거늘 내가 어찌 이러한 나쁜 감각을 받겠는가. 만일 나쁜 감각을 받으면 중생의 복밭이 될 수 없느니라. 내가 스스로 복밭이라고 말하지 않지마는 중생들이 모습을 보고 내가 복밭이라 하느니 내가 만일 이런 나쁜 생각을 일으키면 이는 모든 중생을 속이는 것이니라.”

본래는 삼승이 없고 부처는 항상한 것인데, 현상계의 업력이 다르고, 근기와 복력, 지혜와 살아가는 모습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근기설법을 하기 위해 맞춰주신 가르침이 팔만 장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감각이 항상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며 내가 있음으로 인해 드러나는 현상일 뿐인데, 그것을 붙들고 놓지 못하면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하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아내가 집에서 밥상을 준비해 뒀는데 남편이 바깥에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면 그 밥은 밥을 차린 아내의 몫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어떤 이에게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흉보았을 때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비난한 이의 몫이 된다.
부처님께서 “동전 한푼 들이지 않고 칭송이 자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이익된 바가 없고 복덕과 지혜가 구족해지지 않는 자리가 있다.”고 하셨다. 바라문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데 바라문에게 소고기를 사주겠다고 한다던지, 술을 먹으면 안되는 이에게 술을 대접하겠다고 한다던지 하는 따위의 것이 그러한 것이다.
스님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시주의 은혜가 일미칠근(一米七斤) 즉, 쌀 한 톨의 무게가 일곱근이나 된다고 하였다. 또 여러분들이 근검절약하여 모아서 시주한 그 시주물을 스님이 잘못 쓰게되면 그 과보로 다음 생에서 그를 갚기위해 농촌의 소로 태어난다고도 하였다.
우리네 스님들도 중생들이 복밭인줄 알고 있는데 그 기대를 져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 인들 누우면 편한걸 모르겠는가?
어려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에는 이세상에 오지 않은 요량 하고 혼신을 다해 시작하며, 마치고 나서는 죽은 요량으로 치고 놓자는 것이 본인의 지론이다. 무소유로 살고자 하는 것이 본인의 마음인 것이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겠지만 여러분들이 복밭으로 여기는 승가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었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 볼 때 앞으로 남은 세월과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속에서는 끊임없이 휘저어대는 감각이 있다. 그런 감각이 일어난다면 중생들의 복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복밭이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보고 느끼기를 복밭이라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데, 어찌 함부로 일으키며 대중들을 속일 수 있겠는가.

“불자들아 내가 지난세상에 남을 속인 탓으로 한량없는 세월을 나고 죽음에 헤매면서 세가지 나쁜 갈래에 떨어졌으며, 내가 만일 나쁜 마음으로 남의 보시를 받으면 모든 천인과 오신통을 얻은 신선들이 모두 알고 꾸짖을 것이며, 내가 만일 나쁜 감각으로 남의 보시를 받으면 시주의 과보가 틀리거나 혹은 과보가 없을 것이며, 만일 나쁜 감각으로 시주의 보시를 받으면 시주에게 원수가 될 것이며 모든 시주들이 나에게 대하여 생각하기를 ‘내가 어찌 저들을 속이어 원수라는 생각을 내게 하겠는가?’하느니라.”

응용해 본다면, 우리들 주변에 강도나 사기 혹은 도둑을 맞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손해를 본 것을 가지고, 시주한 요량으로 친다던지, 공양 올린 요량으로 친다던지, 보시한 요량으로 친다고 말한다면 그들에게 그러한 과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절대로 복을 지은 것일 수 없다. 그들에게 죄를 짓게 한 것이고, 본인은 재물만 잃어버린 것일 뿐이다.
또 어떤 이는 조금만 더 모아서 공양을 올리겠다는 이가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에서 실제로 공양을 올리기 전에 파산하게 되어 더 큰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내일은 내 것이 아니다.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은 출가가 아니며, 불교에 귀의한 자가 아니니 출가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서로 상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자일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살아야 한다.
설혹 지금까지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있다 할지라도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이 시대에선 훌륭하다 할 수 있다. 기쁠 때 웃을 줄 알고, 슬플 때에 울 줄 알고, 남의 가슴알이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인성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보살은 자기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 중생을 놓지 않으며, 보살은 늘 주장이 명확해서 말을 잘 풀어서 남김없이 전하며, 보살 스님 불자는 선법에 대한 뜻이 순결해서 거짓을 소멸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차라리 진실된 신앙으로 나아감에 목숨을 마칠지언정 끝내 나를 속이고 너를 속이며 생명을 부지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 남은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소중한 시간으로 간직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잘 적립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잘 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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