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이 땅에 출현하시게 된 배경과 바탕에 대해서 설하고자 한다. 그런데 먼저 오늘이 어버이날이라서 인지 스승의 날이 다가와서 인지 카네이션 선물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카네이션은 여기계신 모든 분들이 모두의 어버이므로 우리네 어버이신 여러분께 드리고자 한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과거생에 내 부모가 아닌 이가 어디 있겠느냐. 굳고 희고 무거운 뼈는 내 아버지의 뼈요, 작고 검고 가벼운 뼈는 내 어머니의 뼈이니라.” 하셨다. 이 말씀은 풍장으로 많은 백골이 쌓여있는 무덤가를 지나시다 예를 갖추시자 제자들이 놀라며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예를 갖추십니까?”라고 여쭈자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부모은중경’을 설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불기 2549년이라고 하는 연호는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서 2월 보름 열반하신 이후 햇수로 2549년이 되고, 남방불교에서는 주기로 하여 2548주년이라 하고 있다. 그기에 80여년을 사바세계에 머무셨으므로 2620여년 전에 이 땅에 오신것이다. 석가여래부처님께서는 진리의 생명인 실상을 들어 보이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게하기 위해서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는 노병사(老病死) 때문이다. 늙고 병들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업력에 의해서 육도를 윤회하는 사생칠취(四生七趣)의 중생들에게 가르침의 생명인 실상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부처님을 십호(十號)로 표현할 때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혜(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이라 한다. 이는 진리에서 오신분, 존경 받고 대접 받을 만한 분, 바른 지혜를 갖추신 분, 아는 것을 실천하신 분, 고통의 바다를 건너신 분, 세상의 일을 잘 아시는 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 중생의 잘못을 항복 받고 다독거려 주시는 분, 하늘과 인간세상의 큰 스승, 진리를 깨달으신 분, 세상에서 가장 높고 존귀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본인이 출가해서 은사스님으로 모신 운조당 홍법스님은 49세를 일기로 세연(世緣)을 마감하셨다. 그리고 벌써 28년 여가 지났건만 해가 거듭될수록 기일에 스님을 애도하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처럼 대중들과 제자들이 뜻을 함께하여 통도사로 운집하는 것은 스님의 큰 복력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복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복이다. 그 복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도 있고 공동체의 것도 있다. 복을 잘 들여다보면 지혜가 없는 사람은 절대로 복이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복을 지을 수 없다. 결국 복이 있는 사람은 복을 지었기 때문이고, 복을 지은 사람은 복을 받는 것이고, 복을 받는 다는 것은 덕화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덕화가 나타난다는 것은 바로 지혜로운 삶을 살고있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는 사람, 선근이 없는 사람은 복력이 있을 수 없고, 복덕과 지혜를 갖출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계시던 그 시절은 모두 100세 이상씩 살던 시절이었건만 80에 생을 마감하셨다. 그 나머지 시간을 우리 제자들에게 복덕과 지혜의 유산으로 남겨주시어 그 보살핌으로 우리들이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도 잘 살고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 가신 것을 우리 대(代)에서 소진해버리면 안된다.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유산을 나의 당대에서 다 소모해버리면 안된다. 부처님께서 2600여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가, 2500여년전 이 땅을 떠나신 이후에 2500년 넘게 부처님의 제자요 우리의 스승이신 사부대중께서 끊임없이 계승발전하여 이 시대에 이르렀다. 능엄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둡고 침침한 허공과 부딪쳐서 흔들리고 요동쳐 바람이 생기고, 마찰로 불이 생기고, 녹은 것은 물이 되고, 굳은 것은 땅이 되었다고 하는 천지음양이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시대에 와서 흔들리거나 무너뜨려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물질적으로 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산다고 하는 것의 개념은 무엇인가. 못산다고 하는 것의 개념은 또 무엇인가. 물질이 풍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혜가 없고 선근(善根)이 없다면 그 물질의 풍요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간직할 것이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는가. 잘 살고 못산다는 개념을 이제는 다시 정립하여야 한다. 우리가 가난한 시절에 목말라 했던 그 물질을 이 시대에서는 구현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으나 노력해서 이제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때와 비교한다면 우린 모두 억만장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를 떠올리며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고 노력만 한다면 굶주림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보니 가난한 것이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물질의 풍요가 우리를 행복하게만 해주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선근이 있고 지혜가 있을 때는 무엇인가 넘치더라도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수용하지 못해 넘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중생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목숨, 이 생명, 이 몸뚱이임을 보게 된다. 또 그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그 어렵고 힘든 환경속에서 자기모습을 잃지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인생은 초대하지 않아도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찾아왔고, 죽음은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세상으로부터 어느날 떠나야 한다. 인생살이는 찾아온 것처럼 그렇게 떠나는 것이다. 누구도 이것에서 거역할 자 없고, 누구도 이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수행정진을 잘 해서 마음을 잘 다스려 이 몸뚱이는 한시적으로 지수화풍 사대가 인연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니 이 몸을 마감하면 우린 또 어느 곳에선가 구성된 표대로 살면서 다듬어 가는 법임을 깨우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는 두가지 법이 있는데 하나는 세간법(世間法)이요, 또 하나는 출세간법(出世間法)이라. 세간법은 세상의 이치라 하고 출세간법은 제일의재(第一義諦)라 하니 이것은 바로 부모님의 화합으로 인해서 태어나는 것은 세간법인 세재라 하고, 십이인연(十二因緣) 즉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가 화합해서 생기는 것이 제일의재라 한다.” 십이연기(十二緣起)에서 보자면 무명에 의해서 태어나게 되고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무명이라는 어두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밝음인데, 밝음이라는 지혜가 드러나면 결국 사대의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태어남, 늙음, 죽음, 근심, 걱정, 고통, 번뇌, 망상은 모두 여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이인연이 화합해서 생기는 것이 제일의재인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지중한 인연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배려하여야 하며 친절하여야 한다. 미운사람을 두어서는 안된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끝이 없다.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어 들여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컵을 들고 있다면 들고 있는 동안은 그 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 컵을 놓아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지덕이다. 지혜는 내관사유해서 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선근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근심은 욕심으로부터 생긴다. 재앙은 물질적인 풍요를 목말라 함으로부터 생기고, 허물은 경망스러운 것으로부터 생기고, 죄업은 참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생긴다. 세상 살면서 보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배운 데로 표현하곤 하는데, 우리는 모두가 이해되고 납득될 수 있는 생각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보시를 하건 공양을 올리건 시주를 하건 스스로 마음을 내어서 하는 것이 최고이다. 두 번째는 남이 원해서 하는 일이고, 세 번째는 상대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부처님께서 “삼계가 다 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하셨다.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우리들도 함께 사는 이웃이나 가까이에 고통과 번민에 쌓여있는 이가 있다면 우리가 마땅히 포근히 감싸 안아서 관심과 배려와 친절로 대하여 그들에게 편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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