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근을 잃지 말아야
등록일 : 2005-07-12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면 한가지도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보여진다. 그것을 불교에서 인연법으로 말하고 있다. 불자들이 공부하고 수행정진 하는 데에는 반드시 좋은 도량과 좋은 선지식과 좋은 도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부를 잘 할 수 있고 잘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중생은 분별과 시비를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중생은 담기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물처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모습이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어찌해서 집착이라고 합니까?” 하였다.
집착이라는 말은 치우치고, 얽매이고, 빠지는 것이다. 범부중생들은 만일 몸에 병이라도 생기거나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몸과 말과 뜻으로 여러가지 나쁜 업을 짓게 된다. 그 나쁜 행동을 지어감으로 우리는 크게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나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삼악도나 아수라, 인간, 천상이라는 삼선도를 윤회하며 헤매면서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받게된다. 그 이유는 범부중생은 생각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사람이 다른 이에게서 듣거나 스스로 경을 보거나 다른 이가 짐짓 가르칠 때에 그런 저런 일에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 집착이다’고 말씀하셨다.
치우치고 얽매이고 빠지는 것은 선(善)일 수 없다. 불자의 살아가는 모습은 인자함이 근본인데 인자함이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이다.
선가구감에 보면 세가지를 요달하여 사무쳐야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 세가지는 큰 신심과, 큰 분심과, 큰 의심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탐진치 삼독으로 제색식명수 오욕락을 일으키고 팔만사천 번뇌망상을 겪는 것들이 바로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집착은 의심을 깨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가섭보살이 여쭙기를
“이런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의심하지 않았거늘 어찌해서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다고 하십니까?”하였다.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드린적이 있다. 어느 스님께서 “참선하는 것 좋은 일이다, 염불하는 것 좋은 일이다. 청법하는 것 좋은 일이다. 절하는 것, 염불하는 것, 불교공부 하는 것, 간경하는 것, 정근하는 것, 주력하는 것, 봉사하는 것 모두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수행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앞서 예기한 모든 것이 다 수행이건만 수행이 더 좋은 일이라고 하신 것이다.
세상 일에는 주객이 전도되면 아니 되고 주업과 부업이 전도되면 아니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이 있겠지만 학생이라면 공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다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 무엇도 현상계에서 100%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다짐하고 확인하고 인식하며 힘과 용기와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공부가 결국은 집착하지 아니함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얼마 전 통도사 방장스님을 뵐 일이 있어 방장스님의 방엘 가게 되었는데, 그 방에는 전 방장스님이신 월하 큰스님의 편액 두 점이 걸려있었다. 그 편액 중 한 점에는 ‘참선자는 인정을 절대 쓰지 말아라’는 뜻의 글이 씌어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이란 지혜있는 사람이 조건없이 살아가는 것이 보살행인데, 어리석은 사람이 무조건 살아가는 것을 보살행으로 보면 큰 잘못인것처럼 공부하는 사람은 집착하지 말하는 뜻이다.
인정이라는 것은 치우치고 빠지고 얽매임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므로 인정을 절대 쓰지 말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편액에는 ‘의심이 나면 쓰지 말고, 썼거든 의심하지 말라.’라는 글이 씌어있었다.
이 글은 세상의 모두가 포함되는 말이지만 응용해서 생각해 보자면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도반간에 등 모든 사이에서 이러한 관계 속에서 구성되어야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염불도 좋고 참선도 좋고 다 좋지만 그보다 수행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수행이란 결국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는 뜻인 것이다. 그 집착이 있는 한은 절대로 의심을 타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도 “대게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의심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우리가 자기 완성을 하는데 있어 청정한 도량과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이 있어야 한다고 했었다.
다시 여쭙기를 “부처님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의심이 곧 집착이고 집착이 곧 의심이라 하는 것은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선근을 끊은 자이니라.”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아 만일 총명하고 잔꾀가 있고 근성이 영리하고 잘 분별하면서도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바른 법을 듣지 않고 잘 생각하지 않고 법답게 머물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선근을 끊은 사람이니라.”
세상은 이분논법으로 가름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영원히 선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악한 사람이 한결같이 영원히 악하게 사는 것도 아니건만 현상계는 늘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구분하려고 한다.
믿음이라는 것도 선근이 근본이 되어 인자함을 드러낼 수 있는 생명력이지만, 또 믿음이 없는 것은 선할 수 없는 것이다.
믿는 사람 중에도 절에 오는 사람 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 절에 오는 사람에도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 예배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예배하는 사람에도 법문을 듣는 사람 듣지 않는 사람이 있고, 법문을 듣는 사람에도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가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듣는 이에도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이가 있고 행동하지 않는 이가 있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이에도 자기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이도 있고 모두를 생각하면서 그 어울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장 수승한 사람이라 하였다.
수행정진을 하면 지혜가 생기는데 지혜가 생겨도 선근이 없는 사람은 교만하고 방자해지기 쉽다. 선근이 없는 사람은 수행정진을 아무리 하여도 자기중심적인 일만 하기 때문에 세상의 원성을 다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할 때에는 지혜를 놓아라 버려라 벗어버려라고 하셨다. 그것이 간교함이요 잔꽤요 교만심이요 아만이요 방자함이라면 모자라더라도 겸손한 사람이 낫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혜와 선근이 없으면 보아도 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선근을 끊은 사람인가? 다 갖추어져 있건만 선지식을 멀리 떠나있는 이이다. 어질고 착한 이를 멀리하고 삿되고 용렬한 무리들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믿고 따르는 이이다. 바른 법을 듣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선지식을 멀리 떠나지 말고 바른 법을 들어야 하고 잘 생각해서 법답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근을 끊은 사람이고, 선근을 끊었으므로 집착하고 의심을 타파하지 못하였으므로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일을 할 수 없었고, 앞으로의 어떤 수행자도 이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가르침만 접하게 된다면 선근을 지니고 있는 자가 잘 받아 지녀서 잘 생각해서 법답게 살 수만 있다면 부처님께서 고행 하신 또 역대 제불조사가 고행하신 덕을 우리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아 이 네 가지를 떠나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물건이 없나니. 왜냐하면 보시 한다는 것은 재물을 버리는 것임에 만일 보시한 과보가 있다면 시주는 항상 가난할 거이니라. 왜냐하면 종자로부터 생긴 과보와 같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것이 곧 선근을 끊는 것이니라.”
잔꾀가 있고 근성이 있고 영리하고 총명한 사람이 자기생각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나면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근이 끊어진 이는 인과를 믿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없는 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게 당부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식구들에게 한마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함께 부처님의 품안에서 안심입명을 구하도록 하여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자들아 시주가 만일 불상이나 목숨을 마친 부모형제를 위해서 보시를 행한다면 곧 받을 리가 없고 만일 받을 리가 없다면 마땅히 과보가 없는 것이고 만일 과보가 없으면 이것은 원인이 없는 것이니 만일 원인이 없으면 이는 결과가 없음이라 말하리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한다면 이런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것이니라.”
불교에서는 믿지않는 이가 제일 불쌍한 이라 하였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수행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비심인데, 자비심이란 바로 선근을 끊지 않으며 지혜를 소멸시키지 않는 것이다.
집착하는 것 의심하는 것은 결국 선근을 끊은 탓이다. 인과도 믿지 않고 윤회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끊임없이 치닫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진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는 자명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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