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건강 목숨
등록일 : 2005-07-29
어제 어느 행성에 태양과 같은 별이 있고 또 비슷한 모습으로 빛을 내는 별 세 개가 함께 돌고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신문기사를 접했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도 태양보다 백 배 천 배 강한 빛을 발하는 에너지 일곱 개가 함께 도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적도 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생각이 혼자 있다 보면 딴 곳으로 갈 법도 한데 부처님 가르침을 떠올리다 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이 사방에서 나를 붙들고 있고, 다만 그 줄을 느끼지 못할 만큼의 자유를 주시되 그 곳에서 한걸음 더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성스러운 가르침의 끈이 있음을 본다.
스님이 된지 얼마되지 않았을 적에는 노(老)불자들이 가끔 그런 질문을 하였었는데, 어제 한 스님께서도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 질문이란 형제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었다.
또 넘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저는 제 인생 속에서 저 스스로를 묶어두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불교대학이나 경전공부 여타 법회와 기도 등의 수 없는 방법을 방편으로 해서 함께하는 자체가 수행이고 정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운전을 하는 중 어쩌다 보니 속도가 꽤 나있었다. 아차 싶어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속도를 줄였다고는 해도 거의 100Km에 가까운 속도였건만 좀 전의 속도 때문인지 거의 정지해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것에서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마음으로 운전을 하는 것이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몸으로 운전을 한다면 사고가 나고 말 것이다.
초보자는 속도가 낮을 때에 몸으로 운전을 하지만 숙련이 되고 속도가 붙었을 때에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것이다. 이는 운전 뿐만이 아니라 참선이나 염불, 정진이나 수행도 세간살이 하는 것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것 등 모두 같은 것이다.
오늘은 이곳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속도를 60~80km로만 달려보았다. 그러자 추월해가는 차들마다 본인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가는 것이었다. 서울 양재동의 구룡사에서부터 일산의 여래사 까지 오는 길의 모든 차들이 본인차를 추월해서 갔다. 하지만 본인의 차가 뒤에서 오는 차보다는 앞서 있으므로 끊임없이 선두에 있음을 보았다.
이렇게 천천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를 추월해가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본인이 초보운전자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초보운전자가 아니다. 그렇게 달리지 못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이다. 천진무구한 큰 스님이 어떻게 보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넉넉하고 편안한 모습인가 하는 것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삶에 깊은 내면에 우리들이 늘 사유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 중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할만하고 탐내는 것이 있는데 그 첫번째가 젊음이다. 두 번째는 건강, 세 번째는 목숨이다. 사바세계에서 천하의 그 누구도 이 세가지를 가지고 있는 복력보다 큰 복력이 없다. 여기에 지난 법문에 얘기했던 좋은 도량과,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큰 복력은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할만하다 해서 탐내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세상의 이치로 볼 때 그것은 사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비록 지금 건강하고 젊음을 가지고 있고, 목숨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허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늘 우리는 염념상속하는 보리심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힘과 용기와 지혜를 드러내는 데에는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하는 시간이 반복되고 늘어날수록 그의 인생은 건강하고 젊고 목숨은 한결같아 질 것이다.
중생들은 경계가 약하면 모든 것이 덧없다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잊어버려서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되는 고뇌의 삶을 살게 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헤있는 이는 온갖 세간사를 깊이깊이 관찰한다. 그러나 지혜있는 이들은 세간사가 의지할 곳이 아니고, 해탈할 곳이 아니고, 고요한 곳이 아니고, 사랑할 만한 곳이 아니고, 머무를 언덕이 아니고,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곳이 아님을 본다. 그래서 내가 만일 이런 세간사를 탐한다면 내가 어떻게 법을 떠나겠는가 하나니, 어두운 곳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광명을 구하면서 도리어 어두운 곳으로 가고 있는 중생은 결국 어리석은 것임을 보아야 한다.”

“불자들아 지혜 있는 사람이 세간이 즐거울 것 없다는 생각을 닦고는 다음에 죽는다는 생각을 하되 이 목숨이 항상 한량없는 원수에게 둘러싸여서 찰라 지간에 줄어들고 증장하지 못함이 마치 산에 있는 물이 머물러 있지 못함과 같고, 아침 이슬이 오래 가지 못함과 같고, 사형수가 저자거리에 나아감이 걸음마다 죽음이 가까워 지듯 하며, 소나 양을 끌고 푸줏간에 나아가는 듯 하다.”

우리는 어른이어야 한다. 자식들이 세월의 깊이 속에서의 아버지 어머니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는 안된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소년소녀가장이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것은 불성에 남녀노소 차별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한 가족 중에서도 큰 아이와 막내의 사고가 다른 것을 비추어 볼 때도 그 환경과 풍토가 사람을 어떻게 다듬어 가는 것인가도 보게 된다.
우리는 어른 이어야 하고 불자 이어야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이어야 하고 아버지 어머니 이어야 한다. 육신의 모습 만으로 또 상대적인 관계로서 만이 아닌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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