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 말아야
등록일 : 2005-08-01
금강경에 “여래(如來)는 시진어자(是眞語者)요, 실어자(實語者)요, 여어자(如語者)요, 불광어자(不?語者)요, 불이어자(不異語者)"라 하여 부처님께서는 진실된 말, 실다운 말, 말 같은 말, 허튼 말이 아닌 말을 하며, 이곳과 저곳에서 다르지 않는 말을 하신다고 하였다.
경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느끼고 이해하며 간직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참으로 성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또 금강경에서는 여래는 육안(肉眼)과 천안(天眼)과 법안(法眼)과 혜안(慧眼)과 불안(佛眼) 을 구족하였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오안(五眼)이 구족되었다는 말인데, 육체의 눈과 하늘의 눈, 지혜의 눈, 이치의 눈, 깨달음의 눈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

욕심이 적은 것과 만족함을 아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욕심이 적다는 것은 구하지도 않고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고, 만족함을 아는 것이란 적게 얻었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서도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면 의(義)를 상한다.”고 하였다. 의(義)란 나[我]의 아름다움[美]인데 그것을 상실하게 된다면 자아에 도취되고 자아가 상실되어 스스로를 속이면서도 속는 줄을 모르고 기만하면서도 기만 당하는지 모르는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을 조건 없이 살아가는 보살행을 한다. 보살행이란 선근이 있는 사람이 지혜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가 없는 사람의 모습은 무조건 사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욕심이 많은 이를 보살이라 하였다. 그 욕심이란 것은 부적절한 표현이나마 욕심이라 하였지만 개인적인 것이 아닌 욕심이다.

부처님께서 성불한지 20년쯤 지났을 때에 “대중가운데에 누가 나를 위해서 능히 내가 가르친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도, 좌우에서 보필하면서도, 그러고도 자기가 자기의 좋은 이익은 잃어버리지 아니할 자 있겠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동안 늘 따라다니던 대중들이 저마다 자신이 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대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소?”하여 거절하였다.
그러자 목련존자가 선정삼매에 들어 부처님의 뜻을 살펴보니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를 마음에 두고 계신 듯 하여 아난을 찾아가 부처님의 뜻을 설명하니 아난은 거절을 하였다. 스스로의 그릇이 그러하지 못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대중들이 권하자 아난은 “꼭 제가 해야 한다면 부처님께서 저의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부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그렇다면 그 세가지 청이 무엇인지를 물으니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주셔도 저는 받지 않을 것이오며, 부처님께 시주가 별청을 하였을 때에 따라가지 아니할 것이며, 저의 출입에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를 듣고 아난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미리 혐의가 있을 것을 보았다 하시며 이를 허락하셨다. 아난은 이때부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까지 약 25년간을 시봉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을 칭찬하시기를
“아난은 여덟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다. 한번도 별청에 따라가지 않았고, 한번도 나의 헌 옷조차 받은 적이 없고, 나를 시봉한 이후로 수시로 드나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고, 부처님이 왕이나 장자들을 만날 때에 그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번뇌를 구족한 일이 없었다.” [중략] 라고 하셨다 한다.

물질적인 것은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중생들의 생각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에서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것이 될 수 없다.
부처님께서 증일아함경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믿는 바 법을 말하면 오히려 화를 내고 상대방을 해치려 하며 아직 곪지 않은 종기를 칼로 째면 아픔이 더한 것처럼 인색한 사람에게 보시를 말하면 그들은 화를 내고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다.”고 하셨다.

“불자들아 모든 이들이 방일한 데에는 다섯 가지 과보가 있으니 하나는 재물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둘은 나쁜 이름이 밖으로 퍼지고 셋은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넷은 사부대중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섯은 하늘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느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중생들을 삼계(三界)육도(六道)사생(四生)칠취(七聚)로 말 한다.
삼계란 욕계, 색계, 무색계 인데, 욕계는 욕심의 세상, 색계는 물질의 세상, 무색계는 비물질의 세상인데, 달리 표현하자면 욕계는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른 우리들의 세상이며, 색계는 냄새를 맡으면 배가 부른 세상, 무색계는 생각만 하면 배가 부른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밥을 먹어서 배가 부른 세상에서도 부자로 잘 사는 물질의 풍요 속에 있는 곳에 정신질서가 더 허물어져 있다.
잘 산다고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서양에서는 불교권 국가가 가난하고 못산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잘살고 못산다는 판단의 기준은 무엇일까?
스스로 ‘나는 만족하고, 행복하다’라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런 나라는 가난하다고 했던 바로 그 나라들이다.
미국과 호주, 대만, 인도등 세계 각국에 인연을 맺고 있는 절들이 있어 그곳의 현실을 느끼고 있는데, 특히 미국의 경우는 일주일 중 한번의 법회에도 참석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대만이나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더 잘 산다고 하는 나라일수록 종교인구는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물질적으로 잘 살수록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고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종교활동을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이 선근이 없고 지혜가 없는 이에게는 독 일 수 밖에 없다. 약이 병든 이에게 적절한 약은 병을 치유 시키지만 건강한 이에게는 독이 되는 것이다. 약이 독이 될 수 있고 독이 약이 될 수 있는 이치를 보아야 한다.
태란습화(胎卵濕化) 즉, 모태로 태어나고, 알로 태어나고, 물에서 습기로 태어나고, 갑자기 태어나는 것의 사생(四生)과, 형상이 있는 것, 형상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두발 가진 것, 네발 가진 것, 여러 발을 가진 것, 발이 없는 것 등의 가지가지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중생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의탁하고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진정한 내 모습인가를 비추어보아야 한다.

게으른 것을 방일하다고 한다. 방종한 사람이 방일하지 않고 방심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방심하면서 사는 사람이 방종하지 않을 사람 없고 방일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방일과 방종과 방심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이다.

본인이 네팔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네팔을 5일의 일정으로 갔었는데, 지루함을 느껴 일을 마치고 3일만에 돌아와 버렸다. 평소 네팔을 좋아했던 본인으로써는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이라는 것은 똑같이 흘러가건만 어디에 있을 때는 지루하고, 어디에 있을 때는 빨리 가고, 어디에서는 편안하고 어디에서는 불편한 것인가. 그 이유가 시간 때문일까 기후와 환경 때문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그렇게 느끼는 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요즘 세태가 변화하여 식구 이외에는 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행복하고 다복한 사람은 사람 꼴을 보는 사람이다. 나의 집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집이 복이 있는 집이다. 인심이 없고 인색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상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어리석은 분별 탓이다. 번뇌 중의 번뇌는 어리석음이다.
방일하고 방종하고 방심하는 열세가지 과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열세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에서 업을 짓기 좋아하고 쓸데없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래 오래 잠자기를 좋아하고 세상일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항상 나쁜 벗을 친히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며 느리고 다른 이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비록 들었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변방에 있기를 좋아하고 여러 근을 조복하지를 못하고 음식에 만족함을 모르고 고요한데를 좋아하지 않고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방일함으로 생기는 열 세가지라 하느니라. 불자들아 방일한 사람들은 비록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친히 가까이 하려 하여도 짐짓 멀어지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 하거든 방심하지 말고 방종하지 말고 방일하지 않는 법을 닦아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마음씨 즉, 선근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게으름 피지 말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선행을 잘 배워서 닦아야 한다. 마음에 게으름을 일으키지 말고 마땅히 성스러운 도리를 부지런히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평생을 크게 가졌지만 그것이 내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하고, 이익이라는 것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므로 물질적인 이익을 바란다면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줄 것이다. 정신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익이 있는 곳에 반드시 원망과 원한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늘 눈여겨 보고, 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기 보다는 함께 어울림을 가지는 삶이 가장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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