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원력 정진 회향
등록일 : 2005-08-08
우리가 흔히 자동차의 소음을 듣고는 거북함을 느끼지만 같은 크기의 소리라도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는 상쾌함을 느낀다. 자연적인 소리와 기계적인 소리는 즉, 실상의 소리와 허상의 소리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중용을 이야기 하고 있고, 불교에서는 중도를 이야기 하고있다. 어떤 이는 이 중용과 중도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중용은 철학적인 학문이라 융통성이 부족한 반면 중도는 크게 보면 쾌락주의에 빠지지 말고 고행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무엇이 쾌락이며 무엇이 고락인가 하는 것은 설정되는 좌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므로 지혜가 필요하다.

신심이라는 것은 생명력이라고도 하지만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하였다. 믿음을 가진 이는 순수할 수 밖에 없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불신으로 만연한 사람일 것이다. 믿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 속에 간직 되어있는 지식이라는 틀 속에 갇혀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가 믿고 있는 바에 대하여는 요지부동인 것이다.
중도라는 것은 양보 할 때에는 양보하고, 피할 때에는 피하고, 부딪힐 때에는 부딪히는 것이다. 부딪히는 것만이 옳고, 피하는 것만이 옳고, 방관하는 것만이 옳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가장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중도이다.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는 것은 중도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그것에 빠지면 이미 그릇된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인데, 그것은 어딘가에 치우쳐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현상계에서는 100%라고 귀결시킬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언제나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진희씨의 ‘마하부드라의 노래’라고 기억되어지는데, 약 25년 전에 이 책을 읽다 보니 말이 청산유수처럼 나오고 허공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어 덮어두었던 책인데, 얼마전 도반스님을 방문하였을 때 그 책을 다시 보게 되어 읽어보니 그때의 느낌과는 달라 다시 읽어보았는데 그 중 한 부분을 발췌해 본다.
‘지식인에게서 가슴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어찌 해서 띨로빠라고 하는 인도스님이 1,200년 전에 티벳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1500년 전에 인도 스님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가지않으면 안되었는가 하는 것은 흔한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가슴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나라는 아는 것이 너무 많다. 이것이 병이로구나.’
티벳불교를 완전히 뿌리내리게 하고 중국의 선불교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두 스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많은 스님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티벳불교가 티벳불교의 모습을 지닐 수 있었고, 중국 불교가 중국불교의 모습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스님이 그러한 불교의 꽃을 피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이 많은 것을 그렇게 좋아할 것이 없다. 아는 것이 많고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면 그것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얼마 전 네팔을 방문 하였을 때, 한국에서 노동자로 근무했던 이가 고향인 네팔의 룸비니로 돌아가 초등학교를 세우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학교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라 대지구입과 건물을 세우는 것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한 불자가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며 거금을 내어놓았다. 그러며 자신은 돈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많은 돈은 평생 써 본적이 없었지만 이런 일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2,600년 전에 이 땅에 출연하시어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이들의 그늘진 곳에 마음을 내시던 그 복력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먼 곳 까지도 미쳐서 본인과 그 불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선업이든 악업이든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을 비교해 보면 결정된 것 보다 결정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 그러므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자꾸 들게 된다.

인간의 108번뇌 중 깨닫기만 하면 없어지는 번뇌가 88가지라 하였다. 108번뇌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신(身),구(口),의(義) 삼업(三業)이라는 몸의 구성원이 인식기관이라는 육근(六根)과 인식작용하는 육경(六境)이 알음알이를 일으켜서 업을 만든다고 하였다.
88가지의 번뇌를 견혹(見惑)이라 한다. 깨달아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번뇌가 10개가 있다.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수행도 해야 하지만 보림(保任)도 해야한다. 맑고 깨끗한 물도 가라앉혀서 먹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을 닦고, 조이고, 기름 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본래 깨달았다고 하고, 본래 착하고 풍부한 것이므로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확인하고 다짐하고 인식하는 보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원력이라고도 할 것이다. 광대무변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없어지지 않는 10가지 번뇌를 수혹(修惑)이라 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나타나는 10가지 업을 합해서 108번뇌라 한다.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 현자(賢子)요 지자(知子)이다. 부자는 만족함을 아는 사람이며,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힘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불교가 인생과 다르지 아니하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을 떠나있는 것이 아니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어울려 살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친절함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웃을 돕고 중생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육도를 윤회하는 업연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향이 아니겠는가.
잡아함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람은 지은 바 업에 따라서 그 갚음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진 행을 닦아야 하고, 그 괴로움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다.
모든 업은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다. 결정된 것은 현세에 받기도 하고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후생에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여 지면 받게 되어있고 인연이 합하여 지지 않으면 아직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잘 살아야 하고, 그 어디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모든 중생에게는 결정되지 않은 업이 많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정진을 하여 무거운 업도 가볍게 받을 줄 알아야 하고,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지 않도록 선근과 지혜를 병합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활불교를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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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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