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약사재일이다. 본인은 여래사 법당에서 예경을 올릴 때 항상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여래사로 오는 길에서 느끼게 되는 마음은 세간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갈 때의 그 마음과 같이 않을까 한다. 한 가정에서도 화목한 가정은 늘 화합을 우선으로 하고, 근본이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는데, 집으로 향하는 그 마음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질 때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또 부부끼리도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달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이번 통도사의 화엄산림 대법회에 ‘십지품(十地品)’을 주제로 법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서 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십바라밀을 행하게 된다. 육바라밀이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법회에서 보시란 번뇌를 버리는 것, 번뇌를 끊는 것, 번뇌를 놓는 것, 번뇌를 여의는 것이라고 했었다. 보시, 시주, 공양이라는 것은 결국 나로부터 일어나는 탐진치 삼독심을 여의는 것이다. 그런데 십바라밀은 방편(方便),원(願),역(力),지(智)로 또다시 지혜가 나온다. 육바라밀의 반야지혜는 무엇이고 십바라밀에의 지혜는 무엇인가.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의 50위와 등각(等覺), 묘각(妙覺) 그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53위가 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가던 중 덕생동자유덕녀(德生童子有德女)를 만나 법을 구하고, 다시 미륵보살을 만나보기를 권하여 미륵보살을 만났을 때 미륵보살은 처음 구법의 길을 떠나기를 권했던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에 선재동자는 그동안 선지식들을 찾아 다니며 얻은 법들이 일순간 무너지는 듯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재동자는 초발심(初發心)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시작하리라 하니 그동안 자신이 선지식들을 찾아 다니며 만들어지게 되었던 그 세계의 틀이 마치 부풀어오른 풍선이 터지면서 공기들의 경계가 사라지듯 사라져버렸고,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아주 깨끗하다. 그 깨끗하던 물줄기가 흐르고 흘러 한강에 이르게 되는데, 한강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만든 먼지와 공해로 인해 오염된 안양천, 양재천, 중랑천, 탄천 등의 지류와 만나게 되면서 탁해진다. 그러나 계속 흘러가 큰 바다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물을 두고 깨끗하다 깨끗하지 못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육지 근처의 바다는 육지에서부터 떠내려온 잡다한 쓰레기들이 같이 포함되어 가고, 바다에서 살고있던 물고기들도 죽으면 썩든지, 가라앉던지, 육지로 떠밀려 올 뿐이다. 불법 바다도 그와 같다. 불교라는 바다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이란 신심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믿는 마음과 믿음을 가진 그 마음,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고 불법승 삼보전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니는 그런 사람을 불자라고 하며 그가 바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불자라면 두 가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불법승의 삼보전에 귀의하여 오계, 십계 등을 받아 지녀야 하며 인과를 믿고 윤회를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불자들에게 업에 대한 말을 할 때에, ‘착하게 살면 천당 가고 올바르게 살면 극락을 가게 되는데, 착한 것은 악하지 아니함 이요 올바르다는 것은 착한 행동이 선행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천당과 극락이 같은 것 인줄 아는데, 천당은 윤회하는 육도의 한 세상이고 극락은 윤회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력과 수행력 그리고 올바른 삶의 모습으로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까르마(Karma)라 하는데, 우리는 업을 잘 성숙시켜야 한다. 나쁜 업을 많이 지으면 평생 나쁜 일만 있을 줄로 알고,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평생 좋은 일만 있을 줄로 알 수도 있다. 또 어떤 집은 착하게 잘 사는데 어렵고 곤궁하게 지내는가 하면 또 어떤 집은 나쁜 짓도 하고 함부로 사는데도 하는 일 마다 잘 되는 집도 있다. 그 연유는 무엇일까.
“불자들이여, 보살이 또 생각하기를 열 가지의 나쁜 업을 크게 지으면 지옥의 인이 되고 중간으로 지으면 축생의 인이 되고 적게 지으면 아귀의 원인이 되는데, 그 중에서 살생한 죄를 지은 중생들은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것이며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두 가지 과보를 받으리니 하나는 단명하고 둘은 병이 많음이로다.”
화엄경을 많이 보았고, 근대의 석학이신 월정사의 탄허 큰스님을 77년도에 모시고 화엄학을 수학하기도 했었건만 어제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십업(十業) 이라 하면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貪), 진(嗔), 치(痴)이다. 처음 나오는 살생은 많이 지으면 지옥에 가고, 중간으로 지으면 축생이 되고, 더 적게 지으면 아귀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육도를 이야기 할 때 삼악도(三惡道)라 하면 지옥, 아귀, 축생이고 삼선도(三善道)라 하면 아수라, 인간, 천상이라 배우고 익혔으며 그렇게 가르쳐 왔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지옥이 제일 무겁고 다음이 축생, 그 다음이 아귀라 하였다. 축생이 되는 과보가 덜 무거운 것으로 알았는데 아귀의 과보가 덜 무거운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또 화엄경에서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순으로 되어 있는데, 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학자들은 망어, 양설, 악구, 기어의 순으로 바꾸어 놓았다. 왜 학자들이 그 순서를 바꾸어 놓았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살생한 과보로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단명하거나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하였다. 우리는 다급생(多級生)에 걸쳐 살생을 알게 모르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많이 한 것으로 알아서 금생에 참회하고 그 중생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원을 하여야 한다. 본인은 본인 자신보다 구룡사, 여래사 등의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 더 중요하다. 만일 본인에 의해서 절에 어려움이 있다면 죽음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 또 구룡사나 여래사 보다는 통도사가 더 중요하다. 또 통도사 보다는 조계종 종단이 더 중요하다. 또 조계종 종단보다는 불교가 더 중요하고, 또 불교보다는 세상이 더 중요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세상까지 넓혀지지 못하고 종단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 머물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자리에서 어느 소임을 맡던 소중히 여기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완전하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완전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것을 여러분들에게 접목시켜 보자면 개인인 나보다 우리 가족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중생은 삼악도에 떨어진다. 혹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가난하거나 재물이 있어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하였다. 사음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하나는 남편이나 아내의 행실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고 둘은 마음에 드는 권속을 얻지 못한다 하였다. 거짓말 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남의 비방을 듣게 되고 남에게 잘 속게 된다. 이간질 한 죄는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권속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친족이 험악하게 된다. 나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나쁜 소리를 듣고 다투는 일이 많다. 번드르르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거나 말소리가 분명치 않게 된다. 탐욕을 많이 지으면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이 끝이 없게 된다. 화를 잘 내면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남들로부터 시비가 끊기지 않고 남의 해침을 받게 된다.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나 혹 인간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삿된 소견을 가진 집에서 태어나고 비굴하게 된다. 이 열 가지 업을 큰 고통의 무더기 인 것을 살펴서 그러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의 열 가지만 짓고 범하지 않아도 10선업이지만 정업을 닦는다고 생각해보라. 살생하지 않고 방생하며, 도둑질 하지 않고 보시하며, 사음하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살며, 진실된 말을 하고 실다운 말을 하고 말다운 말을 하고 미친 소리 하지 않고 탐진치삼독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계율속에 살면서 늘 안심입명이라는 편안함을 유지하고 지혜덕목을 드러내서 많은 이들을 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불자의 길을 가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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