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 대로 살 수 없는 이유
등록일 : 2006-02-06
오늘은 일요 가족 법회일이자 약사재일이다. 또 병술년 새해맞이 기도중이기도 하다. 한해를 마감하고 또 맞이하는 입춘이 어제였다. 오늘 오다가 한강이 꽁꽁 얼어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렇게 추운데도 불고하고 봄기운은 벌써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며 자연이 신비롭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된다.
이 현상계는 이분논법으로 보면 양분화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달라이라마스님은 행복론에서 돈은 자본주의 방식으로 벌고 나눔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마치 가슴으로만 사는 것도 어렵고 머리로만 사는 것도 어렵듯이 머리와 가슴, 생각과 마음을 조화롭게해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보면 대소차이는 있지만, 지혜롭게 사는 사람도 있고 어리석게 사는 사람도 있다. 지혜롭다는 것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일 것이다. 어리석다는 것은 부정적인 사고로 전환된 행동이고 철저한 이기적, 배타적, 편협한 행동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사바에 머무는 동안에 업을 지어도 이내 드러내어 참회하고 다시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짓고도 감추려 하고 그것이 죄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입춘에 호신첩을 나누어 주면서 또 느끼지만 생활속에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익숙해져있는 여법한 불자들을 보면 고맙게 느껴진다. 경전에도 일상적인 생활을 그대로 드러내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설법이나 교화라는 것이 꼭 법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식 중에서 또는 제자들 중에서도 점잖고 말수가 적고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이는 조심스럽고 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은 난처하긴 하지만 대하기는 쉬운 법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세상은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으며 견딜 수 있는 것도 있고, 견딜 수 없는 것도 있다.’라고 상기해본다.
입춘이 되면 우스갯소리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삼천갑자동방석이가 삼년 고개를 조심조심 넘어가다가 넘어져서는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천년만년 살고싶었는데 이제 이 삼년 고개에서 넘어졌으니 일어나봐야 삼년밖에는 살지 못할 것이기에 일어나지도 않고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스님이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삼년 고개에서 넘어져서 삼년을 산다면 두 번 넘어지면 육년이요 세 번 넘어지면 또 네 번 넘어지면…” 이 말을 듣고는 심심하면 그곳엘 가서 일부러 넘어지곤 한다고 한다.
우리보다 앞서가신 이가 얼마나 많은가? 조선실록에 보면 50세가 넘게 산 왕은 몇 되질 않는다. 지금은 의술이 발달되고 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남성의 평균연령이 72세, 여성의 평균연령이 80세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교수가 직업별로 평균연령을 조사한 것이 있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인의 평균수명이 제일 길었다. 일본의 경우에 두 번째가 경제인, 다음은 정치인, 다음은 교수와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예술인 체육인은 평균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왔다. 그것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간장이 녹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종교인이 수명이 가장 길었고 다음으로 정치인, 고급공무원, 교수, 연예인의 순이었다. 그에 반해 예술인, 체육인, 경제인 등의 평균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왔다.
일본의 경우는 경제인의 수명이 길게 나왔던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짧게 나온 것이다. 이것은 사회환경의 영향이다. 사업을 하는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소신있게 열심히 살아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뭔가를 시키면 ‘할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하기가 싫다는 또 다른 표현일 것이라 생각한다.
입춘때 나눈 호신첩은 마치 복권이 당첨될지 불확실하지만 발표전까지는 가지고 다니면 든든한 것처럼 그렇게 든든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눔을 가진 것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사고이다. 숨 하나 안 쉬면 세상을 떠나는데 3년이라고 하면 무척이나 긴 시간이건만 그는 거기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게 되더라는 것이다.
본인보다 생을 일찍 마감한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가장 가까운 은사스님만 하더라도 49에 세상을 떠나셨었다. 그렇다면 본인은 여러 해를 이미 더 산 것이다. 부정적으로 보면 여러가지 안타까움이 드러나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잔의 차나 한잔의 술을 놓고도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생각과 그것을 거부하는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여러분도 경험을 통해서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에 매이고 그것에 잡히고 그것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살다가 말 것인가? 그 무엇에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가? 두 가지 다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도를 이루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자기가 가야 할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본인은 늘 부처님의 가르침을 윤활유라고 하고 비타민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리듬을 가지고 활력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하지만 꼭 그것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고 결코 바람직한 견해가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 약을 먹을 필요는 없으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수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상계에서 작은 불씨도 어느 시점에 인화물질을 만나면 큰 지혜광명을 드리울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임을 우리는 방생을 통해서 보고있다. 새를 날려주고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이 자비의 표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을 중첩해서 하는 그 자체가 생명의 존엄과 생명을 살피는 것일 것이다.
어쩌다 살생 한번 하고 고기 먹고 하는 것이 우리 일생의 큰 허물이 되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성격을 살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 생각들이 하루에도 조석으로 변하고 이다지도 다른 것일까? 그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다음의 열 세가지가 있으면 그 사람은 늘 자기의 생각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이 있을 텐데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게 되면 지혜롭게 살 것이고,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보살행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법이라는 것은 번뇌를 의미하고 좋은 법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번뇌라는 것은 탐진치(貪瞋痴)인데, 어리석은 사람이 욕심이 많아서 화를 잘 내는 것이다. 짜증을 많이 내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화를 내다가도 이내 거두어들이고 짜증을 내다가도 이내 거두어들여서 참회하고 사과하는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흔히 예기하기를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뒤끝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과연 옳은 말일까?
본인은 어렸을 때 보리개떡과 게를 잘못 먹어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지금 까지도 그 냄새만 맡아도 식욕을 잃을 정도로 그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것이다. 음식도 이렇게 큰 상처와 충격을 받으면 이렇게 오래 가는데 정신적으로 마음에 못을 박아서 상처를 주면 그것이 그렇게 쉽게 잊혀지겠는가? 버럭 화를 내어놓고서는 뒤끝이 없다고 한다면 과연 뒤끝이 없는 것이겠는가?
정리해 보자면 그것은 다툼이다. 나와 나의 다툼,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의 다툼, 중생심과 깨달은 생각의 다툼, 낮과 밤의 다툼 등 무엇으로 표기하던 그러한 것들의 끊임없는 다툼인 것이다. 그것이 번뇌요 망상이다. 그 다툼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내게 만드는 것이며 욕심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 다투는 것이다.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내가 지금 실제로 남들의 고통을 떠맡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살이는 갈수록 목을 죄어오고 있고 불안전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만큼 산것도 무지하게 많이 살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 죽는가? 우리는 오늘 죽는다. 내일 죽는 사람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이라고 하여도 지금이라고 말 한 그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을 잘 살아야 하고 지금을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일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할 수 없다고 등돌리지 말고 할 수 있다는 그런 길을 걸었으면 한다.
생명보다 소중하고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얼마전 TV에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의 절규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소망은 휠체어라도 타고 바깥에 나가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몸이 조금 불편하면 해왔던 투정들은 이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얘기이다. 건강할 때 건강한 그 몸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또 오늘보다 내일 더 건강해질 수는 없다.
우리들 주변에 많은 장애인들이 있지만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 않지만 정신이 건강한 사람도 많다. 또 반대로 육체적으로 건강한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 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 중 다음과 같은 이들을 부처님은 경계하셨다.

“불자들아 보살이 열세사지 법이 있으면 태타(怠惰)하느니라. 무엇을 열 세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마음에 믿지 않음이요, 둘은 마음을 짓지 않음이요, 셋은 의심하는 마음이요, 넷은 몸과 재물을 아낌이요, 다섯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열반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어서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멸하게 하겠는가 함이요, 여섯은 마음에 견디지 못함이요, 일곱은 마음이 조복되지 못함이요, 여덟은 수심함이요, 아홉은 즐거워하지 않음이요, 열은 방일함이요, 열 하나는 재물을 가벼이 여김이요, 열 둘은 스스로 번뇌를 보고 깨뜨릴 수 없다 함이요, 열 셋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는 법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니라.” <열반경>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분별하고 시비하고 충격받고 상처받고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고 포기해서 어줍쟎고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능엄경에서는 “중생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몸이다. 재물도 이 몸 다음이고 온갖 부귀영화도 다 이 몸 다음인데, 그 몸이라는 것은 객주집에 왔다가 가는 손님과 같고 허공에 휘날리는 먼지와 같다.”고 하였다.
이 글에서는 불완전한 이 몸을 내 것 인냥 생각하는 그 것에 대해서 경계한 것이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먼지와 같은 것이 이 몸이라 하더라도 먼지가 없으면 비가 오지 못하는 것처럼 이 몸을 함부로 대해서도 안되지 않겠는가.
방영일
스님
법문주제
방송보기
2005-01-10 정우스님 불교는 인간학이다
2004-12-17 정우스님 도를 닦는 이라야 깨달음을 얻는다
2004-12-11 정우스님 흔들리는건 티끌이다
2004-11-29 정우스님 인과와 윤회를 믿어야
2004-11-10 정우 스님 인자함과 방일함
[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