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에서 열반까지
등록일 : 2006-03-13
오늘은 부처님의 출가재일이 채 1주일이 지나지 않은 날이다. 우리가 달력에도 보면 불기 2550년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불기 2550년이란 부처님께서 이 땅에서 80여성상을 머무시다가 열반하신 날로부터 2550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룸비니동산에서 이 땅에 출현하신 것은 2630년 전에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또 출가하신 것은 29세 때 이므로 2600여년 전이며,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2595년 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현상으로 비추어 볼 때는 사월 초파일은 이 땅에 오신 날이요, 2월 8일은 출가하신 날이요, 12월 8일은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날이요, 2월 보름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열반이니, 탄생이니, 성불이니, 출가니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깨움을 주기 위한 방편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날들을 소급해서 비추어보면 우리들이 살아온 시간을 견주어보면 숫자개념의 날자가 분명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본인도 늘 꿈속에서는 소년시절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많은 모습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다급생을 반복해왔고 주변 환경에서 늘 보아왔던 일이기 때문에 관념적으로나 잠재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생각들이 꿈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현실의 모습으로 투영되기도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2550년 전에 열반에 드셨든, 2600년 전에 출가를 하셨든, 또 깨달음을 얻으시고 45년 동안 전법교화 하시다가 이 땅에서 육신으로부터 법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셨든, 우리가 살아온 약 50년 쯤으로 나누어 보면 그 시간이 소급적용될 수 밖에 없음을 알게된다. 본인만큼 살았던 사람들이 50번만 반복해서 이어지면 부처님께서 출현하셔서 이땅에 계셨던 그 모습을 뵐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들은 부처님의 경전, 가르침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가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인도의 성지에 가서 목격할 수도 있고, 스스로 생각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어쩌면 이 사바세계에서 2600여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져 내려온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으로 이루어진 우리 교단의 모습을 보자면, 이 좋은 세상에서 평생동안을 승단에 몸담고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거짓을 말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지봉배하면서 그것을 전승하고 계승하고 이어져가게 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2600여년을 이어져 내려오면서 꼭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 할 것이 있다.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이라는 부처님의 생애를 보자면, 팔상도에서도 그러하지만 석가여래팔상단도에서는 부처님의 일생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규정지어 여덟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룸비니 동산으로 오셨고, 가비라국에서는 사문을 다니면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고 북문에서 희망을 갖게 되셨다. 그러한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이라는 것을 보면 지구와 태양, 달과 지구의 관계 속에서 24 절기가 생겨나듯, 수천 수만년 전부터 똑같이 반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출가와 열반은 50년도 넘는 시간의 간격이 있지만 출가재일과 열반재일은 1주일의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전국사원에서는 정진, 또는 경건주간으로 정하였고, 또 사대명절을 발현해서 뿌리내리고 꽃피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석가여래부처님께서 희망을 갖게 되고, 편안함과 따뜻함을 드러내게 되신 것처럼 우리도 부처님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함께하면서 드러내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지금 금강경 사경볍회, 기도와 108대참 등을 하는 것이다.
사전적 단어로 출가라는 말이 있고, 가출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이 한 남성을 만나서 결혼하는 모습을 출가라고 한다. 또 어려운 시절에 가출을 하여 성공한 이도 있다. 한 가정을 이루었던 어른들도 마음하나 잘 못 먹고 바깥으로 나아가면 그것을 가출이라 하지 재출가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출가에 대한 정의를 해보고자 한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시기 전에 북문에서 만났던 한 수도자의 거룩하고 성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고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되셨다. 부처님께서는 “출가란 세상을 버리고 현실의 고통을 피해서 산 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고 하셧다.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수도하신 곳은 그리 깊지도 않고 그리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지금 네팔에는 9개월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않고 수도를 하고 있는 소년이 있어 세상의 이목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몇 개월간 물이나 환약만 마시면서 단식을 하는 스님들이 있다.
본인도 단식을 해본 경험으로 몇 가지 알려드리자면, 단식은 굶는 것 보다 단식을 풀고 난 후 다시 음식을 먹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렵다. 또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사람은 뼈가 상하지만 먹을 것이 있지만 스스로 먹지 않은 사람은 뼈가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한집 자식은 먹어도 먹어도 얼굴빛이 좋지 않지만, 부잣집 자식은 굶어도 굶어도 얼굴빛이 좋다. 이 말은 먹는 것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편식을 하면 안되지만 어른은 먹고싶은 음식을 먹는 것이 보약이다. 나이가 들수록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어떤 음식도 몸에 화기가 있으면 소화할 수 있고, 어떤 음식도 몸에 화기가 떨어지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우유가 약이요, 몸에 냉기가 많은 사람은 우유가 독이라’ 하셨다. 그러나 우유로 만든 치즈 등은 냉기가 많은 사람도 먹을 수 있다. 또 건강한 사람에게는 약이 독이 되기도 하고, 병든 사람에게는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무엇인가를 규정짓고 결정지어 말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출가란 ‘생사없는 영원한 진리를 깨달아서 일체중생과 더불어 하려는 마음의 행동’이다. 재가불자들은 단기 출가 등을 통해서 체험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일체중생과 더불어 나고 죽음이 없는 생명의 진리의 실상을 깨우치고자, 더불어 함께 사는 이들과 어울림을 가지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커다란 내던짐이요 출가의 모습이다.
부모형제라는 가족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고, 일체 중생이라는 큰 가족을 위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출가의 근본 정신이다.
원효스님께서는 발심수행장에서 출가의 정의를 ‘마음 가운데 애착을 떠난 이를 사문이라 하고, 세속을 그리워 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고 하셨다.
마음을 알고 근본을 통달해서 다함이 없는 법을 깨우쳐야 이것을 이름하여 수행자라 한다.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 종자 속에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리니 왜냐하면 종자를 떠나서는 열매를 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있다 하고, 종자에서 싹이 나지 않았으므로 없다 하리니 이런 뜻으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불자들아 무슨 까닭이냐 시절은 다르나 그 자체는 하나이니 중생의 부처성품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중생 중에 따로 부처성품이 있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이 곧 부처성품이요 부처성품이 곧 중생이지만은 다만 시절이 다르므로 깨끗하고 깨끗치 못할 뿐이니라.”
“불자들아 어떤 이가 묻기를 이 종자가 열매를 내겠는가? 이 열매가 종자를 내겠는가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내기도 하고 내지않기도 한다 하리니라.”
종자는 씨앗이다. 열매는 곧 종자다. 열매를 따면 씨앗이 되고, 씨앗이 자라면 열매를 맺는다. 씨앗이 다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열매가 모두 씨앗이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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