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도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많은 불자들과 함께 21일동안 기도 정진 하였다. 대중 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하는 기도였지만 새벽기도에 동참하기 위해 낮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네 몸이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단함에 빠질 듯 하여 용맹정진하듯 밤을 새우고 새벽기도에 동참하였다. 이번 새벽기도를 통해 육체적으로 아무리 고단해도 잠시 잠깐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만 있다면 몸에 대해서 어려울 것은 없겠다는 것과 또 육신이 편안해도 마음이 고단하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음을 보았다. 오늘은 불기 2547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여러분과 저는 인연이 깊어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종자가 되었으면 한다. 종자라는 개념은 씨앗과 열매라는 이름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열매가 열려 씨앗이 되고, 씨앗이 자라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석가여래부처님 오신 날이라 부르는 오늘은 2547년 전에 열반에 드신 날이다. 그러나 그것에 마음 쓸 일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알기만 하면 된다. 석가여래부처님께서 도솔천 내원궁에서 호명보살로 살고 계시다가 오탁악세(五濁惡世)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 진리의 실상을 보여 깨달음의 세계로 들게 하기 위한 개시오입((開示悟入)즉 열어서 보여서 깨달음으로 들게하신 이 날은 청정법신으로 나투심을 의미하는 날이다. 우리들이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4월 초파일은 탄생하신날, 2월 8일은 출가하신 날, 12월 8일은 깨달음을 얻으신 날, 2월 15일은 열반하신 날이다. 이번 기도중에 40여년의 수도생활을 통해 느낀 것은 우리들의 삶이 무엇을 떠난 무엇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부처님의 생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본 것이 있다. 부처님이 출가하신 것은 몇 시쯤 이었을까, 깨달음을 얻은 것은 몇 시쯤 이었을까, 태어나신 것은 몇 시이며, 열반하신 것은 몇 시쯤 이었을까. 우리는 대게 낮은 활동하는 시간, 밤은 휴식하는 시간으로 정해놓고 살지만, 모든 시간들은 전부 나의 인생이요 나의 삶이다. 부처님이 출가하신 것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깨달음을 얻으신 것은 꼭두새벽, 열반에 드신 것은 깊은 밤, 태어나신 것은 훤한 낮이었다.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셨지만, 룸비니는 부처님의 외할머니 이름이다. 이를 통해볼 때 당시에는 남존여비사상이 없는 남녀평등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나서 사방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들의 사고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지만 맘에 둘 일은 아닌듯 하다. 평소 기도를 할 때에 21배나 3배, 혹은 7배를 하였지만 오늘은 9배를 하였다. 9라는 숫자는 단위중 가장 큰 수로 한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에 육도를 윤회하는 세상이 28천이 있다고 하는데, 사방 일곱 걸음이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를 향하여 천지음양에 상응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요 삼계가 개고하니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하리라.”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하늘아래 온 세상에 우리모두는 다 존귀하다.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화택(火宅)이니 내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편안케 하리라.”하셨다고 한다. 화엄경에 보면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모든 불자들은 선근(善根)을 길러내는 자양분으로 믿음을 삼아야 할것이다. 초파일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늘 초파일만 같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늘 새벽기도가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도심 포교당에는 생활 불교인들이 늘 함께 했으면 한다. 종단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90%이상이 마음의 안정을 위하고, 삶의 의미를 구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하였으며, 단 3~4%가 복을 받기 위해서 라고 했다. 요즈음은 풍요로움에 겨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취사선택만 잘 한다면 세상에 스승 아닌 사람이 없다. 화엄경에 보면 보살은 10가지로 선지식이 있다. 선지식은 반드시 대중들에게 이와 같은 모습을 주어야 한다는 반증법칙이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열가지 선지식이 있으니 이른바 보리심에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선근을 내게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바라밀타를 행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법을 해석하여 말하게 하는 선지식이며 일체 중생을 성숙케 하는 선지식이며 결정한 변재를 얻게하는 선지식이며 모든 세간에 집착하지 않게하는 선지식이며 온갖 시간동안 수행하듯 게을리 하지 않게하는 선지식이며 보현의 행에 편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이며 불지혜로 들어간 데로 들게 하는 선지식이니라
반야경에 보면 온갖 현상이 다 불법이다고 하였다. 인식기관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온갖 세상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법이다 라는 말이다. 불법(佛法)을 달리 말하면 출세간법(出世間法)이다. 출세간은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법은 출세간법과 다르지 않다. 불법과 세간법은 서로 혼란을 격는 일이 없고, 차별이 있지 아니하므로 법계의 체성은 평등하여 욕계, 색계, 무색계에 평등하다.
불자들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안에 있는것도 아니고, 밖에 있는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중간에 있는것도 아니다. 세상의 현상에서 드러나는 진리나 우리 내면에서 사유하고 있는 진공과 묘유라는 개념은 참으로 드러나, 있는 그대로의 진공의 자리임을 본다면 언제 어느곳에 있든 흔들림 없는 삶의 진정한 좌표가 드러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 함께해야 하고, 우리도 이와 같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25년전쯤 인도 성지순례길에 만났던 10여세의 어린 사미승이 올해 초 인도 성지순례길에서 다시 만나니 절에서 중심 소임을 맡고 있다고 하였다. 예전에 맺었던 그 소중한 인연으로 이후 순례길 마다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어왔다. 이는 마치 볶은 참깨를 얻기 위해 참깨를 볶아서 밭에 뿌렸더라도 물론 볶은 참깨가 날 리 없겠지만, 그 밭에 다시 참깨의 씨앗을 뿌린다면 다른 밭보다도 더 좋은 참깨를 얻을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근을 증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바라밀타, 보살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우리는 일체중생을 성숙시켜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정된 변재(辯才)란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근기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세간에 집착하지 않도록 나와 나 자신, 나와 나의 가족 그 어떤 관계에서도 치우치거나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집착은 구속이며, 구속은 얽매임 이며, 얽매임은 부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서로 살펴야 한다. 온갖 시간동안 수행을 하되, 게으르지 않는 수행이어야 한다.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함에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흔들림 없는 길로 나아갈 때에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 지혜로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불교에서는 효친사상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버이 날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공양 가운데 으뜸인 공양이 법공양이지만, 그보다 더 수승한 공양이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공경하고 순응하며 받드는 공양이라고 하셨다. 이런 개념에서 비추어 본다면 가족으로 만나는 그 인연은 얼마나 큰 인연인가. 내가 나의 구원자 이고, 내가 나의 적이다. 명예를 구하는 것은 남에게 있고, 도를 구하는 것은 나에게 있다. 도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불교는 신앙(信仰)생활이라기 보다 신행(信行)생활이라 해야 한다. 믿음이라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이는 실천하는 행동을 해야하며, 행동을 하면 반드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신앙이라 함은 찾아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불교는 나 안에 있는 부처를 찾아야 하는 데, 이것이 신행생활인 것인데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이나 선지식을 본보기로 해야 한다. 세상의 번뇌망상은 남에게서도 찾을 수 있지만 도를 구하는 것에는 나에 매어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 무엇인가에 많이 집착하고 살아 왔지만, 집착하고 살았던 그 속에 진정한 나가 있다. 조계종단에서는 ‘가족을 부처님처럼’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부처님처럼 가족을 대한다면 따뜻한 가정이 절로 이루어 질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 내면 속에서는 느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사람들은 영혼이니, 업이니, 부처니, 혹은 마음이니 하고 있지만 들여다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위대한 존재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분기점에서 사고전환하여 괘도수정 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 없는 선정이라는 내관사유가 필요하고, 흔들림없는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는 지혜를 닦아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길을 걷는데는 혼자 가는 것 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과 같이 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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