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
등록일 : 2003-07-25
중생 경계로 바라보면 세상은 크게 나누어 보면 천가지만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낯과 밤이 하루이고, 어둠과 밝음이 빛이듯 모든 것을 두가지 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들 역시도 지혜있는 이와 어리석은 이로 나누어 볼 수 있을것이다. 지혜있는 이는 지혜로써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고, 어리석은 어리석은 허물로 잘 살 수 있는 세상도 잘못 살게되는걸 보게된다.
지혜있는 사람은 혹여 업이 무거워서 내생에 지옥에가서 받을 업을 소멸하기위한 노력을 금생에 하고, 어리석은 이는 금생에 가볍게 넘어 갈 수 있는 일도 훗날 무거운 업으로 가중해서 받을 수도 있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면서 산다. 오늘 지나간 어제를 그리워 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 지나간 어제를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또 내일 지나간 오늘을 그리워 하는 이도 있고, 후회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 오늘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게된다면 오늘을 최대한의 삶으로 살아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 본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그러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농사를 짓는 농부가 씨앗을 뿌린다면, 문전옥답과 약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한 밭과 자갈이 많아 농사짓기 힘든 밭이 있다면 어떤 밭부터 농사를 지어야 할것인가. 이미 알고 있을것이다. 농부는 당연히 문전옥답부터 씨를 뿌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약간의 수고로움을 들여 씨를 뿌리고, 그래도 시간여유가 있다면 자갈밭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진리는 상식인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식인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에, 치료를 하면 반드시 나을 사람과 확률이 반반인 사람, 치료를 하더라도 수명이 다하여 떠날 사람이 있다면 누구부터 치료를 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서는 분분한 의견이 나오지만, 이 역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치료하면 나을 사람부터 치료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할 때에 총명하고 효순하고 대인관계가 좋은 자식과 총명하지만 효순하지 않은 자식과 총명하지도 않고 효순하지도 않으며 장애가 있는 자식이 있다면 누구에게 상속을 해야할 것인가. 이 문제에서는 더더욱 분분한 의견이 나온다.
이렇듯 농부의 이야기 에서와 다르게 분분한 의견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하여 7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참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안과 밖에 어디에 있겠는가. 행복이란 것은 안을 떠나서도 밖을 떠나서도 반쪽의 행복일 수 밖에 없다. 본성의 자리는 안과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에 모든 세간에는 일곱가지 과보가 있다고 하셨다.
불자들아 모든 세간에 일곱가지 과보가 있나니 하나는 방편의 열매요 둘은 은혜갚는 열매요 셋은 친근한 열매요 넷은 남은 열매요 다섯은 평등한 열매요 여섯은 과보의 열매요 일곱은 멀리 여윈 열매니라.
우리가 열매라고 하는 개념을 불교의 전문적 술어로 보면 ‘과덕의 자리’라고 한다. 인과법으로 보면 인과응보의 자리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이것을 종자의 개념으로 보자면, 씨앗이 종자이고 열매가 종자이다. 씨앗은 열매를 따른 것이고 열매는 씨앗을 종자로 삼아 키워 결실을 맺게 한 것이다. 씨앗과 열매는 둘이 아닌 것이다. 이것을 떠난 저것, 저것을 떠난 이것이 존재치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을 볼 때, 소가 주체인가 아니면 언덕이 주체인가.
예전 경봉 노스님이 젊은 시절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 “만해 스님이시여 성북동에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 했으니 소를 찾는다는 뜻이고, ‘목부’라 호를 지었으니 소를 키운다는 뜻인데, 소를 찾는 것이 맞소? 아니면 소를 키우는 것이 맞소?”라고 편지를 띄웠다. 이에 대한 답으로 만해스님은 “늙은이가 할일이 없어 부질없이 분주함을 떨었소.”하니 다시 경봉 노스님은 ”삼각산은 첩첩하고 중중한데, 차나 한잔 드시오”하였다 한다. 이는 선지식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이기에 이 이야기를 접하고 큰 감동을 받았었다.
무엇이 가까운 인이고, 또 무엇이 먼 인일까? 방편의 열매라 하면 가을에 곡식을 많이 거두었을 때 “이것이 방편의 열매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방편이라 함은 지혜있는 자의 노력에서 얻어진 결실이다. 가까이에는 종자가 있었고, 멀리는 물과 거름과 사람의 공력으로 이러한 결실을 얻은 것인데 이것이 방편인 것이다.
그러므로 씨앗과 물과 거름과 사람의 공력이 방편의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두 번째 은혜갚는 과덕이란, 세상사람이 부모에게 공양하면 부모들은 “우리는 지금 낳아 길러준 과보를 받는다.”고 하여 자식이 은혜갚음을 과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가까운 인(因)은 부모의 지난 과거에 선(善)한 과보로 오는 것이다. 먼 인(因)은 곧 낳은 바 효자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친근한 열매로 세상을 살다보면 가까운 이도 있고 멀게 느껴지는 이도 있는데, 그 원인의 하나는 믿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선지식이다.
네 번째는 남은 열매라 함은 살생하지 않음으로 생기는데, 하나는 몸과 말과 뜻이 깨끗함이요 또 하나는 장수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남은 여생을 건강하고 깨끗하게 오래 살면 좋지 않겠는가.
다섯 번째는 평등한 열매란 가까운 이는 중생들이 열가지 선업(十善業)과 정업을 닦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과보의 열매인데, 하나는 현재의 몸과 말과 뜻이 깨끗하고, 또 하나는 과거의 몸과 말과 뜻이 깨끗한 것이다.
일곱번째는 멀리 여윈 열매로 하나는 삼해탈문이요, 먼 인(因)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닦은 선법이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을 여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말씀이다.
어제의 한강이 오늘의 한강이 아니며, 오늘의 한강이 내일의 한강이 아니듯 살아있는 세계 죽어있는 세계, 이승과 저승과 전생이 나누어 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종자가 되어 서로의 가슴속에 있는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관심과 배려와 사랑을 서로 주과 받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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