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음을 쓰며 살아야
등록일 : 2003-09-05
하운청 교수의 ‘산으로 가는 마음’ 중

세상을 버리고 산으로 가는 까닭이 무어냐고 누가 묻거든
그때는 나무의 숲이 무서워 사람들 사이에 묻혀 살다가
이제는 인간의 숲이 무서워 나무들 사이에 숨어살려고
세상을 돌아서 산으로 가는 까닭이 그거라고 말해 주거라

며칠전 통도사에 다녀왔는데, 그기서 느낀 것은 불과 2~3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인구가 산사를 찾지 않았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건데,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또 정보화사회로 변모하면서 지금은 물질적으로는 풍요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이 세상이 극락세계가 아닌 까닭에 한쪽이 풍부하면 다른 한쪽은 빈곤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질의 풍요라는 것이 결코 세상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없고,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세상은 상대적으로 두 유형의 모습이 있다. 흑백논리라고도 하듯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사람이 있다고도 하고,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다하고,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행복하며 어떤 사람이 불행하며, 어떤 사람이 복된 인생이며 어떤사람이 박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일까
그것은 하나는 지혜를 들어서 사물을 관찰 할 수 있고, 또다른 하나는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비춰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지혜나 어리석음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로부터 시작됨을 본다. 지혜있는 이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관찰하고 행동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정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가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분분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나, 지혜있는 사람은 슬기로운 삶을 사는데, 그것은 바로 부지런한 인생을 삶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방일한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사를 찾는 많은 이들 중에는 유치원을 다니기에도 이를듯한 어린 아이조차 스스럼 없이 스님에게 합장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그것은 복된 인생을 살수 있는 인연의 고리와 고리의 만남이라 생각한다.
방일한 사람이 다섯가지 과보가 드러나는게 있다. 저는 이런 법문을 대할 때 마다 통도사의 방장스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사는게 우습더라, 그 일을 하고 나면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이란걸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텐데도 그런 것들을 가름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더라.”
우리는 부정적인 사고로 인생을 가름해 보면서 자기중심적인 이익에 편성해서 살아가는 것이 물질의 풍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인 피폐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게으른 이의 다섯 가지로 나타나는 현상 중의 첫번째가 ‘게으른 사람은 재물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화엄경에는 ‘과거 생에 살생을 많이 한 이는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혹 삼악도에 가지 않고 인간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단명하거나 병고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결국 단명한 사람이나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과거생에 살생을 많이 하거나, 상대를 많이 괴롭힌 사람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장수하고 건강하고 복된 인생을 살려면 살생도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에 괴로움을 주지 말아야 한다.
역시 화엄경에 ‘남의 물건을 많이 훔친 사람은 삼악도에 떨어지지만 혹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빈궁하거나 재물이 있어도 쓰지 못한다.’
참자유를 구한다고 어항속에 갇혀있던 물고기나 새장속의 새를 자연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항이나 새장에서 풀어준다면 그 물고기나 새는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범주도 마찬가지로 서서히 늘여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어른도 서서히 자라나면서 어른이 되어야 하고, 높은 직위 역시도 충분한 준비를 갖춘 다음 올라야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효율적으로 활용할줄 모른다. 마치 지혜있는 사람이 조건없는 삶을 살아갈 때, 어리석은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조건없는 삶으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게으른 사람은 나쁜 이름이 밖으로 자꾸 퍼진다’
자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허물이므로 남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더라도 그 안목은 자신의 비춰진 모습에 의한 것이므로 자신의 허물인 것이다.
이웃과 벽을 쌓고 문을 걸어 잠그고 살며 교류하지 않는 것이 이웃의 허물이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허물이겠는가.
세번째는 ‘게으른 사람은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이 결국 우리에게 엄청난 파장을 상반되게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지혜로운 이는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데, 방일한 사람은 보시하지 못한다.
네번째는 ‘게으른 사람은 사부대중을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는 스스로 ‘내마음의 절반은 부처다.’ 혹은 ‘절에 가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불자다’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중생은 스스로를 확인하고 다심하고 인식함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게으른 사람은 천상인간의 몸을 얻지 못한다.’
착하게만 살아도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착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것은 선정삼매나 반야지혜를 닦으면 바른 소견이 드러남을 알기를 바란다.
게으른 사람은 이 다섯 가지를 멀리할뿐더러 열세가지 허물이 있다고 하였다.
불자들아 방일하면 열세가지 과보가 있나니
세간에서 업을 짓기를 좋아하고, 쓸데없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래오래 잠자기를 좋아하고,
세상일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항상 나쁜 벗을 친히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면 어리고, 다른 이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비록 들었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변방에 있기를 좋아하고,
음식에 만족함을 모르고, 고요한데를 좋아하지 않고, 소견이 바르지 못함이니라.
방일한 사람은 비록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과 부처님 제자들을 친견하려 해도 멀어지게된다. 선근이 약화되어서 그런 것이다.
사물은 긍정적으로 보면서 살고, 지혜의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마음을 잘 쓰면서 살자는 것이다. 마음을 잘 쓰면서 살면 지혜로운 것이요 긍정적인 것이다.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더라도 인색하지 말고, 옹색하지 말것이며, 앞서 말한 다섯가지에 계합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방영일
스님
법문주제
방송보기
2004-05-10 정우스님 어떻게 살 것인가
2004-05-03 정우스님 소중히 여겨야 할 나
2004-02-24 정우스님 중생에 내는 보살의 마음
2004-02-11 정우스님 병들게 하는 이유
2004-01-26 정우스님 나를 바라보는 나
[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 169 1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