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법에 더럽혀지지 않는 법
등록일 : 2005-11-07
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지혜의 힘으로 훗날 지옥에서 받을 무거운 업도 금생에 가볍게 받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생에서 가볍게 받을 수 있는 업도 다음 생에 무겁게 받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나쁜 업을 짓지 않고, 혹 짓더라도 이내 참괴심(慙愧心)을 드러내어 참회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죄를 많이 지으며 짓고도 감추려 한다.
대승경전에 보면 삼계(三界), 육도(六道), 사생(四生), 칠취(七趣)를 얘기 하는데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인데 또 욕계 육천, 색계 십 팔천, 무색계 사천으로 이십 팔천이라는 세상이 있고,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윤회하는 세상과 그 생명체는 태(胎), 란(卵), 습(濕), 화(化)로 인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승경전에서 아수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수라란 싸우기 좋아하는 무리를 말하는데 이러한 아수라가 대승경전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지옥에도 아수라가 있고, 축생에도 있고, 아귀, 인간세상, 천상세계에도 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육도 중에 싸우는 무리가 없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몇 가지 법을 구족(具足)하면 세상으로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고 세상법에 더럽혀지지 않겠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하나는 신심(信心)이요, 둘은 계율(戒律)이요, 셋은 선지식을 친히 가까이 함이요, 넷은 안으로 잘 생각함이요, 다섯은 정진(精進)을 구족함이요, 여섯은 바른 생각을 구족함이요, 일곱은 지혜를 구족함이요, 여덟은 바른 말을 구족함이요, 아홉은 바른 법을 좋아 함이요, 열은 중생을 불쌍히 여김이라 불자들아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으로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법에 더럽혀지지 아니하니 우담바라꽃이나 연꽃과 같으니라.”
먼저 믿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력이다. 그리고 계율이란 규범인데,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어울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식을 가까이 하여야 한다. 그리고 안으로 잘 생각하는 내관사유(內觀思惟)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진지하게 사는 정진을 하여야 하며, 바른 생각의 정념과 바른 지혜를 가져야 한다. 또 바른 말을 하여야 하는데, 바른 말이란 망령된 말이나 비단결 같은 말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거 저 말하거나 악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삿되고 용렬한 이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 설파하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바른 법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애민섭수(哀愍攝受)하며 살아야 한다.

반야심경에 보면 “제법공상(諸法空相)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말이 나온다. 제법공상이라고 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부처성품의 자리이기도 하고, 우주적인 자리이기도 하며, 본성, 마음, 법, 진리, 실상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무상지상(無相之相)이 실상(實相)이라 하셨다. 소품반야경에는 “마음 없는 마음을 마음이라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 마음이냐”라는 가르침도 있다. 한결 같은 마음이 마음 없는 마음이고, 시비하지 않는 마음이 한결 같은 마음이며 마음 없는 마음이다. 무심지심(無心之心)이 진심(眞心)이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열반하신 통도사 큰스님께서 써주신 글이 있다. `진리무상 미 언설 일체만물 무비통(眞理無相 未 言說 一切萬物 無非通)’ 진리는 언어 이전의 소식이며 일체만물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불생불멸’이라 하면 무엇이 불생이고 무엇이 불멸인가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좋지 않은 법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 불생이요 좋은 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불멸이라 하셨다. 우리 불자들은 좋지 않은 법이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며, 좋은 법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또 어떤 법이 좋은 법이며 어떤 법이 좋지 않은 법인가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좋지 않은 법이란 번뇌요, 좋은 법이란 번뇌가 없는 마음이라 하셨다.
선가대사의 선가구감에서는 ‘단번뇌 명이승(斷煩惱 名二乘)이요 번뇌불생 명대열반(煩惱不生 名大涅槃)’ 이라 하였다. 또 열반경에서는 ‘단번뇌 명해탈(斷煩惱 名解脫)이요 번뇌불생 명열반(煩惱不生 名涅槃)’이라 하였다. 이는 그 뜻이 같은 말이다. 결국 번뇌를 끊으면 해탈한 것이고, 번뇌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열반에 든 것이다. 번뇌는 괴로운 자리이고 열반은 즐거운 자리이다. 색신은 괴롭고 무상한 자리이고 법신은 항상한 자리이다. 스스로 나라고 하는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이 결여된 나는 무아이지만 참 나는 부처이다. 깨끗한 것은 법이요 부정한 것은 현상이다. 이것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이치이다.
번뇌란 삼독심(三毒心)이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대게 욕심이 많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화를 잘 낸다.
어느 책에서 ‘1분에 2페이지 정도를 읽을 수 있고, 하루 15분 정도만 틈을 내어서 책을 읽는다면 1년이면 36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머리맡에도 식탁에도 사무실에도 응접실에도 책을 두어서 언제든 시간이 날 때 책을 읽기를 권하였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먹는 것 잠 자는 것은 어떨까, 또 참선하는 것 기도하는 것 수행정진하는 것은, 또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떨까를 생각해보았다.
어떤 이가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산다면 1년의 120일은 굶고 사는 것과 같다. 만약 수명이 잠자는 시간으로, 또는 먹은 밥의 양으로 정해진다면 많이 먹고 많이 잠잘수록 수명은 짧아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또 하루 조금씩 이더라도 참선을 하고, 기도를 하고, 수행정진을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거창하게 헌신, 봉사, 희생이니 하는 말을 할 필요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돕고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먹고, 잠자고 하는 것에 집착하고 얽매이지 말고 그 시간을 줄여서 다른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더불어 다투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을 수 있는 열 가지 법을 보면서 우리는 본질의 자리인 본성이 무엇이며, 또 좋은 법은 무엇이고, 좋지 않은 법은 무엇인지를 비추어 볼 때, 스스럼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공자님께서는 “남들이 나를 몰라준다고 애태울 일이 아니라 내가 남을 모르고 있음을 부끄러워하라”고 하셨다. 또 “내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소홀한 것은 없는지, 내가 이웃과 함께 어울리면서 믿음을 잃지는 않았는지, 내가 배운 바를 익히고 실천하는데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식이다. 우리의 보편적인 견해 속에서 모두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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