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
등록일 : 2005-11-27
기도정진이나 참선 등의 수행의 목적은 삶의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고통과 괴로움을 수행을 통해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다면 그 고통을 이용해서 마음을 성숙시키고자 염불이나 기도, 참선 등의 수행을 하는 것이다. 한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그 고통과 괴로움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가야 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필요로 한다면 필요로 하는 그 에너지가 더 큰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본인 역시도 그렇게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다니다 보니 이 곳에서의 강의를 진행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또 그렇게 바삐 다니다 보니 육체가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예전에 구룡사 불사를 위해 5년 동안 백고좌법회를 할 때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팔 대참을 세 번씩 한 적도 있고, 하루에 천 팔십 배씩 21일 동안 정진기도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면 육체적으로는 힘들다. 그러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육체적인 고단함의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고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수행정진을 하기 위함 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적게는 일주일에서 많게는 21일간의 단식을 수 십번 해 보았었다. 마음과 몸이 따로 되는 형태가 생기면 그것을 조복받는 데에는 단식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 경기가 힘들다고 한다. 힘들다고 하는 이들의 시주금으로 생활하는 우리 같은 스님들은 더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자동차를 갖고 다니는 스님들이 많아졌고, 심지어는 절에서 근무하는 처사들도 차를 갖고 다니는 것을 보곤 한다.
본인도 자동차를 갖고 있지만 소임을 마치면 자동차는 없는 것이 더 자유롭고 편안하리라 여기고 있다. 얼마 전 총무원장직을 맡으신 지관큰스님께서는 정릉의 경국사에서 혜화동의 가산문화원 까지를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셨는데, 그 기분이 무척 좋다 하셨다. 대게의 사람들은 맛난 음식을 맛보고 나면 그보다 못한 맛의 음식은 먹기를 꺼려 한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동국대학교 총장까지 지내셨던 분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이 방해 받거나 방해 받지 않거나 괴롭히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그 마음을 성숙시키고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려는 수행정진의 삶이 연속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사람을 보고 냉혈동물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몸은 따뜻하기 때문이다. 뱀은 몸이 냉한 동물이라 먹이를 먹고 나서는 햇볕을 쬐어서 먹이의 소화에 도움을 준다. 그렇지 않으면 속에서 탈이나 심지어는 죽게 되기도 한다. 뱀에게 우유를 먹이면 몸에서 독이 성하여 자신의 몸을 물어뜯어서 결국 죽고 만다.
이를 보자면 우유는 사람에게는 약이 되지만 뱀에게는 독이 됨을 알 수 있다. 나에게 독이 되는 것도 다른 이에게는 약이 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들어내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눈물로 인해 눈이 짓무르게 된 한 노파를 찾아가셨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노파의 한 아들은 우산장사를 하고 다른 아들은 짚신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날이 맑으면 우산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안될 것을 걱정하고, 날이 흐리면 짚신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안될 것을 걱정하여 매일을 근심 속에서 눈물짓다 보니 눈이 짓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말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날이 맑으면 짚신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요, 날이 흐리면 우산을 파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이니 매일 매일이 기쁜 날이 아닌가 하고 일러주셨다. 그 노파는 이 가르침으로 매일을 기쁘게 살게 되었고 눈도 나을 수 있었다.
마음이 번거롭고, 마음이 분주하고,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늘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마음을 밝고 맑게 가지며 살아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로 세상을 기쁘고 즐겁게 살면 주변의 이들도 기쁘고 즐거운데, 어둡고 암울하게 살면 주변의 이들에게도 그것이 전해지게 되어 모두가 어둡고 암울해 지는 것이다.

젊은 불자들 가운데 ‘미래의 불교를 책임지겠노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오지도 않은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 보다는 현재의 불교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라’고 말하곤 한다. 지금 당장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함께 절에 와서 그 아이의 손에 보시할 돈을 쥐어주고 직접 보시할 수 있게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자라면서 보시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느끼고 행하게 될 것이다. ‘물은 젖는 성품이 있어 그릇의 방원(方圓)에 따르고 사람은 벗의 선악(善惡)을 본 받는다.’고 하였다. 사람은 어떤 사람과 어떻게 어울리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을 다니면서 미국이 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중의 한가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출퇴근시간의 도로에서는 미국의 대통령보다도 더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 스쿨 버스이다. 또 12세 미만 어린이의 보호자는 반드시 어린이가 스쿨 버스에 타는 것을 직접 보고 배웅하여야 하며, 그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올 때에는 보호자가 반드시 마중을 나와야 한다. 만일 보호자가 나와있지 않으면 그 아이를 내려주지 않는다. 이 제도 한가지 만으로도 미국의 오늘이 있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어제 오늘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몇 십년 된 제도이므로 지금의 장년들이 그 제도의 혜택을 받았고, 그 때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다.
과거에 느꼈던 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또 현실에 반영하여야 오늘 보다 밝은 내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처해 있는 공간과 입장만을 생각해서 이렇게 저렇게 행동 한다면 아무런 기대할 것이 없게 된다.

간혹 사람들은 ‘왜 하필 내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왜 하필’이 아니라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노출되어 있는 부분이다. 모든 것은 다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인가에 너무나 크게 치우쳐 있고, 얽매어 있고, 집착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그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참 자유를 얻고 누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자신의 내면에 본래 존재하지도 않는 그 자아는 내가 아닌 것을 알아서 나로부터 그것을 던져버리지 않고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유란 것도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라 하고, 부족하면 방일이며, 육신과 정신이 따로 움직이면 방심하게 된다. 참 자유라는 것은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기 도리를 함으로부터 나온다.
여여하고 한결 같은 성품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고[상일성(常一性)], 나를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는 내가 아니다[주재성(主宰性)]. 그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여류작가인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은 그의 소설 지문에서
‘행복은 때때로 슬픈 얼굴로 다가온다.
나의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너무 슬퍼서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불행인 줄 알고 내던졌었다.’라고 적고있다.
기쁜 얼굴만 행복이 아니라 슬픈 얼굴도 행복이다. 기쁘고 즐거운 시간만 나의 인생이 아니라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나의 인생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나의 삶이 낮에만 있고 밤에는 없다고 알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나고 죽는 생사윤회의 현장에서 보면 모두가 무지해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 하는 것이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무거운 짐 일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우리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에게 장애물이나 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어서 놓지 못하고, 벗지 못하고, 던지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한 장님의 얘기를 한 바 있다. 장님이 길을 가다가 낭떨어지에 떨어졌는데, 떨어지면서 나뭇가지를 간신히 붙들 수 있었다. 그 장님을 매달린 채로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지나는 행인들 중 아무도 그의 팔을 붙잡아 끌어주지는 않고 잡고있는 나뭇가지를 놓으라고만 하는 것이다. 장님은 볼 수 없으니 그 높이를 짐작하지 못해 손을 놓으면 다칠 것 같았지만 정작 그 높이는 발만 닿지 않을 뿐 지상이나 다름 없는 높이였던 것이다.
결국 팔에 힘이 빠져 떨어지게 되고, 그제야 매달린 것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이 우리들 인생살이 속에 많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출세간의 법을 말하기 위해서 세간법을 말하기도 하셨고, 세간의 법을 말하기 위해서 출세간법을 말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선근이 있고 지혜가 있는 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심인지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한번도 중생을 위하는 일이 아니거나 제일의 도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또 부처님께서는 “만일 여래가 알고 보고 깨닫는다는 상을 지으면, 이는 부처님이 아니고 범부중생이라 이름할 것이다. 부처님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보살도 그러하다.”
부처님은 무엇을 하더라도 드러내는 일이 없으셨다. 그러나 가르치기 위해서, 상대가 필요해서, 발심해서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글이다.
겨울에 어둠이 내리면서 눈꽃이 내리기 시작했고, 언뜻 보니까 길모퉁이에 자동차한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형색이 남루한 그 청년은 최신형 고급 승용차 안에서 한 노부인이 불안한 표정이 역력함을 보고 다가가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다. 그 승용차는 타이어가 펑크 나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청년은 타이어를 바꾸어 주었다.
노부인은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였지만 그 청년은 “저는 도움이 필요한 분을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정말로 저에게 답례를 하고 싶으시다면 다음에 혹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거나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떠나갔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아내가 산달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직업을 잃은 상태였고, 그의 아내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시골의 작은 간이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노부인은 놀란 마음과 불안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지나가는 길의 작은 식당에 들러서 잠시 쉬며 요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노부인이 들어간 간이식당은 그 젊은이의 아내가 일하고 있는 식당이었다. 노부인은 음식을 먹고 100달러 짜리 지폐를 지불하였다. 만삭의 그 아내는 거스름돈을 구하기 위해 이웃으로 갔는데, 그 사이 노부인은 다음의 메모를 남기고 떠나갔다. ‘거스름돈은 소중한 일에 쓰세요, 저도 어떤 고마운 분에게 도움을 받았거든요, 제가 지금 당신에게 한 것처럼요.’
조건 없이 도움을 주고 스스럼 없이 떠났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부처님께서 100세 이상씩 살던 그 시절에 80의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그 복덕과 지혜가 전해지고 전해져 우리가 받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 이자를 다 탕진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근검절약하게 살면서 저축해간다면 후대의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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