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순례기간중 20년이 넘게 꾸준히 인도, 네팔을 찾는 스님으로 인도, 네팔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신문사의 인터뷰를 받았다. 그래서 “인도는 생각할 때 마다 이성간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기분이고, 네팔로 건너올 때는 늘 어머니 품에 안기는 기분이다.”라고 말 해 주었다. 순례객 중에서는 순례에 목적을 두는 이도 있지만 간혹 사진활영에 몰두 하는 이가 있는데, 제대로 순례를 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순례는 마음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중 난승행(難勝行)
보살의 십중소락(十種所樂) 보살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열가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所樂하니) 불자들아 보살은 열가지 좋아함이 있으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樂正念이니) 이른바 바른 생각을 좋아하니 (心不散亂故며) 마음이 산란치 않은 연고며 (樂智慧니 分別諸法故며) 지혜를 좋아하니 모든 법을 분별하는 연고며 (樂往詣一切佛所니) 모든 부처님 계신데 가기를 좋아하니 (聽法無厭故며) 법문 듣기에 만족함이 없는 연고며 (樂諸佛이니) 모든 부처님을 좋아하니 (充滿十方하야 無邊際故며) 시방에 가득하여 가이없는 연고며 (樂菩薩自在니 爲諸衆生하야) 보살을 좋아하니 자제하게 중생을 위하여 (以無量門으로 而現身故며) 한량없는 문으로 몸을나타내는 연고며 (樂諸三昧門이니) 모든 삼매의 문을 좋아하니 (於一三昧門에 入一切三昧門故며) 한 삼매의 문에서 모든 삼매의 문에 들어가는 연고며 (樂陀羅尼니) 다라니를 좋아하니 (持法不忘하야 轉授衆生故며) 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여 중생에게 주는 연고며 (樂無 辯才니) 걸림없는 변재를 좋아하니 (於一文一句에 經不可說劫토록 分別演說하야 無窮盡故며) 한 글자와 한 글귀에 가르침을 말 할 수 없는 시간동안에 분별하여 연설하되 다 함이 없는 연고며 (樂成正覺이니) 바른 깨달음을 이룸을 좋아하니 (爲一切衆生하야 以無量門으로 示現於身에 成正覺故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문으로 몸을 나투어 바른 깨달음 이룸을 보이는 연고며 (樂轉法輪이니) 법륜 굴리기를 좋아하니 (滅一切異道法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온갖 외도에 법을 꺽어 버리는 연고니라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則得一切諸佛如來無上法樂이니라) 모든 부처님여래의 위없는 즐거움을 얻느니라
달라이라마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는 책에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는 결코 우리의 교만심을 꺽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겸손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삼일 수심은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라고 하였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 성스러운 마음은 그 기운이 천년을 덮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20여년 전 첫 인도 성지순례를 나설 때 통도사 노스님들께서 여비를 마련해 주셔서 잘 간수하여 순례길을 떠났다. 순례길에서 20여명의 어린 스님들을 만났는데, 그 어린 스님들은 모두가 심한 부스럼과 피부병에 고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비를 다 들여서 치료를 하게 한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매년 순례길에 그 절을 찾아가 보시를 하고 있다. 이번 순례에도 그 절의 주지스님과 그 일행을 만났는데, 본인과 같이 있던 링림포체스님을 보자 절하며 우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 스님이 전생(前生) 링림포체 스님과 같은 절에 있었다는 것이다. 삼일동안 잘 닦은 수행이 천년을 덮고도 남는다고 했는데, 20여생에 걸쳐 수행을 했다는 링림포체 스님은 얼마나 훌륭한 스님이겠는가, 어린 링림포체스님을 보고 저렇게 절하며 우는가를 보면서 얼마나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달라이 라마가 “요즘 부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하고있다.”라고 하였다.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철저히 사회의 구성원이다.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그 부자들은 이제 스스로 사회주의 방식을 통해서 가난한 이들의 교육과 건강에 도움을 줘야 한다.” 고 하였다. 작년에 어느 책에서 가슴깊이 느꼈던 글이 있다. 어느 조각가가 밑그림도 없이 돌을 조각하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그 연유를 물으니, “이 돌덩이 속에는 내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모습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만 나는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있을 뿐이요.”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는 다 부처성품을 갖추고 있는데, 번뇌망상이라는 무명업식으로 인해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이 붙어있다. 그 군더더기만 덜어낸다면 우리는 본래의 갖추어져 있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될것이다.
“범부나 현인이 또 성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범부가 중도패 한다던지 현인이 중도패 한다던지 하면 성인이 되지 못한다.”고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지만 중도에 미리 포기해 버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해진 것은 없다. 부처님 께서 말씀하시길 연금사가 한 종류의 재료인 금으로 여러가지 물건을 만드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에 따라 여러가지 물건으로 만들어 지는 것처럼, 우리의 부처성품은 낱낱중생들에게 재료로 들어있지만 번뇌망상으로 인해 종성이 달라지고 모습이 달라지는 이치를 살펴보며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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