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에 ‘세상사람들의 이목(耳目)을 자신의 이목으로 삼아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하면 그 밝은 눈으로 비춰보지 못할 것이 없고, 그 밝은 귀로 듣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이목만을 고집하다 미혹에 빠져들기를 자초하고 있다. 부처님 께서는 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중 하나는 잘 사는 사람(善子)와 잘 살지 못하는 사람(不善子)이다. 또 세상에는 매우 희유한 사람들이 있어, 마치 삼천년에 한번피는 우담바라꽃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나쁜 법을 행하지 아니함이요, 또 하나는 있는 죄를 참회함이다. 절대로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혹 업을 지어도 진참회(眞懺悔)를 하는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이 우담바라 꽃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은혜를 지어가는 사람, 또 하나는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원시경전에서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쉼이 없다. 원망하는 마음을 내 스스로 쉴 때 원망은 사라진다”고 하셨다. 세상은 절대로 혼자 살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것만 보아도 그러하다. 어머님의 은혜로 태어나고, 자란 것이며, 또 농촌에서 열심히 땀흘려 농사짓는 농부가 없었다면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을것인가? 이 모두가 은혜인 것이다.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희유한 우담바라꽃과 같은 이가 있으니 새로운 법을 물어 배우는 이요 옛것을 익히어 잊어버리지 않는 이다. 또 새것을 짓는 것이요, 옛것을 닦는 것이다.
또 법 듣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하나는 질문을 잘하는 이요, 또 하나는 답변을 잘하는 이다.질문을 잘하는 이는 그대요, 답변을 잘 하는 이는 나다.”고 하셨다. 또 잘 묻는 것으로 인하여 위 없는 무상심심미묘(無上甚深微妙)한 법륜을 운전하고 십이 인연의 연기법을 시들지 않게하며 갓이없는 생사의 큰 강을 건너게 하며 탐진치 삼독으로 인한 번뇌와 오욕락으로 인한 망상, 무지한 자의 욕심으로 드러나는 마구니의 유혹을 다 여일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세가지 병 중에 훌륭한 의원과 간병하는 이와 좋은 약을 만나면 나을 수 있는 이가 있고, 만나지 못하여 못 나을 이가 있고, 만나든 만나지 않든 나을 이가 있고, 만나도 나을 수 없는 이가 있다고 하였다.
결정된 수명을 가진 사람은 죽지 않는다. 결정된 수명을 가지고 살려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야 할것이다. 그 단적이 예로, 어느 기자가 간디의 최근의 근황에 대하여 묻자 그 유명한 간디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요즈음 나이든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곤 하는데, 이것이 내 생애중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병난이가 만일 용한 의사를 만나고, 좋은 약과 간병인을 만나면 병이 낫지만 만나지 못하면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치를 “불자들아 이런 사람은 수명이 결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은 비록 다하지 아니하였으나 아홉가지 인연을 만나면 목숨이 단명하는 것이니 하나는 먹어서 편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먹는 것이요 둘은 많이 먹음이요 셋은 미리 먹은 것이 아직 소화되기 전에 또 먹는 것이요 넷은 대소변이 때를 따르지 못함이요 다섯은 병 났을 적에 의원의 말을 따르지 않음이요 여섯은 간병하는 이의 시킴을 따르지 않음이요 일곱은 억지로 참고 토하지 않음이요 여덟은 밤에 다님이니 밤에 다니므로 나쁜귀신이 침노함이요 아홉은 방사가 너무 과도함이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용한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나을것이요 만나지 못한다면 낫지 못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아홉번째의 방사란 너무 과도한 부를 누리고 삶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 또한 수명을 재촉하는 한 이유이다.”라고 하셨다. 수명이 다한 사람은 살릴 수가 없는데, 이에 대하여도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수명이 다한 연고니 이런 이치로 내가 말하기를 의원과 약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낫지 못한다는 것이니 중생도 그와 같아서 보리심을 낸 이는 선지식과 부처님과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마땅히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는 것이니 그 까닭은 능히 보리심을 낸 까닭이며 부끄러줄 사람이 수명이 결정된 것과 같나니라 내가 말하기를 수다원으로부터 내지 연각인 벽지불이 선지식이나 부처님과 보살의 말씀하는 깊은 법문을 들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만일 부처님이나 보살이 말씀하는 깊은 법문을 듣지 못하면 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함은 저 수명이 결정되지 않은 사람이 아홉 가지 인연으로 목숨이 단명하는 것과 같나니 저 병난 사람이 의원과 약을 만나면 병이 쾌차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서 깊은 법을 들으면 보리심을 내고 만나지 못하면 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하느니라.” 여기서 선지식이나 부처님이나 보살을 만나 법문을 듣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간에 보리심을 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아니함이다. 이가 마치 대의왕(大醫王)을 만나도 병을 고치 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평상심이 도라고 하였다. 평상심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어리석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도 믿음을 가지게 되면, 즉 신심이라는 생명력을 지니면 이는 마치 천년동안 어둠속에 쌓여있던 공간이라도 빛을 밝히면 환하게 밝혀지는 까닭과 같은 것이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간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인간 세상이 수행정진하고 내가 나답게 살수 있는 가르침이 있는 곳이므로 살아 볼만한 곳이 이곳이 아닌가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이웃에 대한 관심 그리고 친절이 바로 보살행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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