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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 I 세상에 태어나시다 I 세상을 두루 살피시다 I 출가 하시다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I 마왕을 항봅시키시다 I 진리를 설하시다 I 육신을 버리고 열반에드시다

 

부처님의 생애

 

 

불교는 말 그대로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불타(佛陀, Buddha), 즉 깨달은 사람(覺者)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소질과 성품이 있는데, 이를 불성(佛性)이라 한다.

저마다 불성을 간직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 첫째, 부처님의 생애를 알고 그 삶대로 사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한 인간이 진리를 깨쳐 부처님이 되는 길을 보여준다. 우리가 불자로서 본받아야 할 삶의 모범은 바로 부처님의 생애에서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배우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고 나서 그 교주의 삶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부처님이 된 삶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

 

중생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부터 우리도 부처님같이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것이다. 불교를 믿고 행한다는 것은 결국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같이 살고 싶은 이에게 부처님의 생애는 다시없는 인생의 귀중한 나침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여년 전, 인도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카필라(Kapila)국 사캬(Sakya, 釋迦)족의 정반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Gotama, 최상의 소라는 뜻)였고, 출가하기 전 이름은 싯달타(Siddhartha)였다.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 즉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렀다.

 

발심과 서원 -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다.

 

지금으로부터 한량없는 오랜 세월 전에 수메다(善慧)라는 한 수행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잃고 7대조부터 내려오는 막대한 재산을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보시한 후 출가하여 히말라야에 들어가 수행자가 되었다.

그때 연등(燃燈)이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수도(首都)인 디파바티(Dipavati)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연등부처님을 공양하고자 온갖 향과 꽃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고 연등부처님을 기다렸다. 마침 공양물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들른 수행자 수메다는 연등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말을 듣자 기쁜 마음이 치솟았다.

 

‘나는 여기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한 수메다는 부처님께 공양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도시에는 왕의 지시로 모든 공양물이 부처님께 바쳐져 하나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수메다는 아름다운 꽃 일곱 송이를 들고 가는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가서 그 꽃을 팔 것을 간청했다. 그녀는 팔지 않을 마음으로 이 꽃 한 송이는 은 1백냥이며, 또한 나와 결혼을 약속한다면 이 꽃을 팔겠다고 했다. 수메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결국 그 꽃을 부처님께 바칠 숭고한 마음으로 그녀의 조건을 받아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수행자의 진지한 마음에 감탄하여 나머지 꽃마저 부처님께 공양하라고 주었다. 수메다는 그 꽃을 연등부처님께 바쳤다. 연등부처님께서는 뭇 중생을 가르치고, 젊은 구도자 수메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대중이 바친 꽃을 허공에 떠있게 하는 기적을 보이셨다.

그때 마침 연등부처님과 제자들이 지나는 길에 진흙 웅덩이가 있었다. 수메다는 부처님께서 발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흙 위에 머리를 풀고 엎드렸다. 진흙 바닥에 엎드린 채 그는 다짐했다.

 

아!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세존(世尊)이신 연등부처님 같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어 지기를 …… 세존이신 연등부처님께서 지금 하셨듯이, 나도 이 최고 법의 수레(法輪)를 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오직 세상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할 수 있고 또한 무수한 생명들의 이익과 행복이 될 수 있는 연등부처님과 같은 생명이 되게 하소서.

 

이 광경을 본 연등부처님은 제자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견디기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이 수행자를 보라. 그는 지금으로부터 무량한 겁이 지난 후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니라.”       

 

견줄 사람 없는 대성인의 말씀을 듣고 천인과 인간들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수행자 수메다는 분명 부처님이 될 씨앗이요, 부처님이 될 싹이로다.’

모든 이가 지나간 뒤 엎드려 있던 수메다는 몸을 일으켜 스스로 앉아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쌓아온 수행을 생각해 보자.’

그때 1만 큰 세계가 크게 진동하였고 그 진동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연등부처님은 현자 수메다가 부처님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덕목을 모두 깊이 사유하고 있는 까닭에 이 대지와 1만 큰 세계가 진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연유를 말씀해 주셨다. 이때 1만 큰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기필코 부처님이 되실 것이옵니다.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주소서. 멈추시거나 물러나서는 안되나이다. 저희들도 또한 당신이 기필코 깨닫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나이다.”

수메다는 모든 부처님이 이루신 깨달음의 근본적인 덕목인 10바라밀 수행을 남김없이 생각해 낸후 10만 아승지겁을 지내면서 10바라밀의 수행을 닦아 스물네 분의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이름은 호명보살이었다.

 

※보살이 닦은 열 가지 바라밀이란, 모든 것은 베푸는 보시(布施), 계율을 지키는 지계(持戒), 번뇌의 속박을 떠나는 출리(出離),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智慧), 끊임없이 노력하는 정진(精進), 욕됨을 참는 인욕(忍辱), 거짓 없는 진실(眞實), 굳게 뜻을다지는 결정(決定),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행하는 자비(慈悲), 공평하여 치우침이 없는 사(捨) 등이다.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도솔천에서 내려오시다

 

 

호명보살이 10바라밀 수행을 닦고 도솔천에서 머물고 있던 어느 날 모든 하늘세계의 천인들이 보살의 처소에 모여 들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범천·전륜왕의 영광을 위해 이룬 것이 아니옵고, 오직 세상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일체지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나이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되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이나이다.

호명보살은 천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날 때와 지방, 가계와 생모에 대해 살핀 뒤 석가족의 마을에 있는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시리라 결정했다.

그리고 나서 호명보살은 바로 깊은 선정 속에서 마야부인의 태에 들었다. 정반왕과 결혼한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마야부인은 그 때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자를 잉태하였다.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 세상에 태어나시다.

 

 

 모든 백성의 기대 속에 따스한 봄이 되고 왕비의 산달이 다가왔다. 마야부인은 해산일이 다가오자 인도의 관습에 따라 친정인 테바다하로 행하였다.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다. 동산에는 아름다운 사라나무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왕비는 상서로운 사라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갑자기 산기를 느꼈다. 일행은 급히 처소를 마련하였으나 그녀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선채로 아무런 고통 없이 아들을 낳았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토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다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태자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의 감로수로 태자의 몸을 씻어 주었다. 땅이 은은히 진동하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천신들이 내려와 차례로 예배드리며 이 세상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태자가 태어난지 닷새가 되자 히말라야로부터 아시타 선인이 내려와 태자를 뵙고자 했다. 태자의 얼굴을 본 아시타는 슬피 우는 것이었다. 불길하게 생각한 정반왕이 연유를 묻자 아시타 선인은 대답하길 “왕자는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요,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이 될 것인데, 자신이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했다. 한편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싯달타가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태자는 이모를 새어머니로 하여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 따라 아들이 출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반왕은 태자가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호화스러운 궁전을 지어 향락 속에 자라게 하였다.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 세상을 두루 살피다.

 

 

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 속에서 성장한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예를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만한 스승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하도록 궁전을 세곳(三時殿)이나 지어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도성 밖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다. 태자가 현실세계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세 되던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과 함께 농경제의 파종식에 참가하였다. 그 때 태자는 들에서 농경제에 참가한 농부들의 마르고 고단한 모습과 쟁기를 끄는 소들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또한 쟁기가 지나간 뒤 뒤집혀진 흙 사이로 나온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는다. 약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이에 싯달타는 염부나무 밑에서 그 고통의 해결을 찾기 위한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때 태자는 초선(初禪)의 경지에 들었다고 한다. 태자가 자비심으로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길을 찾아 선정에 들어 있을 때, 이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태자를 세상과 더욱 멀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태자의 세상에 대한 고뇌는 더욱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태자는 삶의 생생한 실상과 마주친다. 성년이 된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 몰래 성문 밖을 나선다. 그리고 동문·남문·서문에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 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번민하던 싯달타가 북문에서 만난 사람은 바로 출가수행자였다. 그리고 싯달타 태자는 출가수행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을 사문유관이라고 한다. 태자가 네곳의 성문에 나가 세상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왕궁의 영화와 권세, 향락과 사치 그리고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했던 태자는 출가수행자에게 그 길을 찾았던 것이다.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 출가하시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오분율》

 

수행자를 만난 후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싯달타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밤에 백마를 타고 왕궁을 떠난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수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이 태자의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애마 칸타카를 타고 마부를 따라 성을 나온 싯달타는 보검을 빼들어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깍은 뒤, 과거의 모든 부처님 앞에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깨닫겠다고 굳게 서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비단옷을 거지의 누더기와 바꿔 입었다.

이렇게 하여 출가수행자가 된 싯달타는 인도 남쪽의 신흥 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다시 그는 다른 스승인 웃다카라마풋타에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을 배웠다. 하지만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다. 싯달타는 스승에게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행을 시작하였다.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여러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이가 없었을 때, 싯달타는 당시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했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싯달타의 고행은 실로 다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에 최상의 고행자였다. 남들이 바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워먹었다. 나는 무덤 사이에서 시체와 해골과 함께 지냈다. 그때 목동들은 내게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들이 찾아들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한 고독한 고행자였다. 나는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낮은 땅에서 낮은 땅으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홀로 지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는 고행자였다. 나아가거나 물러서거나 조심하여 한 방울의 물에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운데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들 일지라도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하루를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맵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이레에 한 끼를 먹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무척 수척해졌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붙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를 쳐박고 넘어졌다. 살갗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혀 나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 싯달타 태자는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이제 곧 목숨을 다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부처님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행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실 만큼 고행에 몰입하였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고행을 함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생활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행을 한 사람은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었고,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고행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이때 싯달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상에서 수행자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찬탄하는 것이며,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에 무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행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으로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무모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찾았다.

 

중도는 곧 양 극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결코 양 극단을 적당히 절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에 ‘중이란 곧 바름이다(中者正也)’라고 하였듯이 중도란 곧 정도(正道)의 다른 말이다. 쾌락과 고행의 가운데가 아니라 진실로 바른 길을 뜻한다.

따라서 고행의 포기는 출가 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관습까지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수행자들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결정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람은 부처님을 타락하였다고 비난하며 떠났다. 그러나 부처님은 주저없이 고행을 포기했다. 이것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의 생애에는 위대한 포기가 몇 번이나 있다.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왕위를 포기했고, 행복과 안락이 보장된 가정을 떠났으며, 모두가 믿는 당시 최고의 사상을 포기했다. 최고의 고행자라는 명예도 포기했다. 이것은 세상 전부가 자신을 외면할지라도 참된 것이라면 주저없이 결단을 내리는 참된 수행자의 길을 보여준 것이다.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 마왕을 항복시키다.

 

 

 수행자 싯달타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내 여기서 위 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수행본기경》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으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부른다.

바야흐로 싯달타 수행자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가장 다급해진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중생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마왕 파순이었다. 마왕 파순은 “사문 고타마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려 한다. 그가 깨달음을 성취하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그 깨달음의 경지는 나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가 깨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먼저 자신의 세 딸을 보내 고타마를 유혹하도록 하였다. 마왕의 세 딸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고타마는 수미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찌, 귀에는 귀걸이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너희들은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자 마왕의 세 딸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그러자 마왕은 화가 나서 수행자 고타마를 향해 태풍·폭우를 보내고 창칼·불화살·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했다. 그러나 부처님 앞에서 그것은 모두 꽃으로 변하여 흩날릴 뿐이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싯달타 앞에 나타나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석가족의 아들 고타마여! 그대는 속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그대에게는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곧 가서 세간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오감의 쾌락을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겨라. 석가족의 아들이여! 그대가 추구하는 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피로만 더할 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렇게 회유하자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준엄한 사자후를 한다.

 

게으른 자의 무리여, 사악한 자여,

그대가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가 말하는 그 좋은 공덕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런 것은 그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 주어라.

……

나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끌려가지 않는다.

보라, 내 존재의 이 순수를.

그대의 제1군대는 욕망이며

제2군대는 혐오이며

제3군대는 기갈이며

제4군대는 집착이다.

그리고 그대의 제5군대는 피로와 수면이며

제6군대는 공포심이요

제7군대는 의혹이며

제8군대는 위선과 고집,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이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전 병력이며

검은 마군이다.

그러므로 용감한 자가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 없으리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그대의 공격을 이렇게 잘 막아내고 있다.

……

악마여, 사람들도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굽지 않은 질그릇을 돌로 쳐 깨뜨리듯이

                                                《숫타니파타》

 

그리고 부처님은 머나먼 과거세부터 한량없는 세월을 선근공덕을 쌓아왔기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마왕 파순은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다. 수행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이 능히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이때 땅을 지키고 있던 지신(地神)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치자 대지와 삼천대천세계의 국토는 두루 크게 진동하였다. 마왕은 이 우렁찬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의 항복을 받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깊은 선정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불상을 보면 왼손은 가부좌한 발 위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무릎 위에서 아래로 땅을 향하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항복받으신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수행자 고타마에게 어떤 장애도 없게 되었다. 깨달음을 끝까지 가로막고 있던 악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구속이 사라진 수행자 앞에 세상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 이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이다’라는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이 연기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한편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한 악마들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면 이들이 수행자 고타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세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듯하다. 끝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욕망 가운데 가장 먼저 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육체의 욕망, 즉 색욕이었다. 이 세 딸의 첫째는 은애(恩愛), 둘째는 상락(常樂), 셋째는 대락(大樂)이라는 것을 보아도 성적 쾌락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공격은 마왕의 여덟 가지 군대로 표현된 욕망·혐오·기갈·집착 등 마음 속의 온갖 번뇌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은 전륜성왕의 자리였다. 이것은 곧 권력욕을 뜻한다. 이것은 색욕과 공포보다도 더 질기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권력욕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 국가와 민족,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욕망이다. 부처님은 마왕의 항복을 받은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에선 무기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

나는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까닭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마음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

                                        《수행본기경》

 

결국 이 세 가지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육체적·정신적·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마왕의 온갖 유혹과 물리적 위협을 극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가져야 할 불퇴전의 수행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성도(成道)란 불도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곧 수행자 싯달타가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신 것을 말한다. 이 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이날은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며 불교에서는 성도절(成道節)이라 하여 뜻깊은 날로 삼고 있다. 성도절은 수많은 마왕의 군대를 항복받고 깨달은 날이며, 인간의 몸으로 신의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유인의 시대를 연 날이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 주셨다. 온갖 번뇌와 고통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중생들도 사실은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 알려 주신 것이다.

부처님의 성불 이후 새로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까지 인간은 고통과 혼돈, 무명 속에서 신과 제도와 욕망에 사로잡힌 포로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성불하심으로 중생도 대자유, 대자재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녹야전법상 (鹿苑轉法相) - 진리를 설하시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의 심정은 이렇게 전해진다.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상응부경전》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에게 진리를 깨우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한다. 범천의 간청에 따라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하고 이렇게 알린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전도를 결심한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은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설산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의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한 이들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들을 당신의 깨달음을 전하는 첫 대상으로 삼으셨다. 최초로 설한 것은 중도·사성제·팔정도의 가르침이었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니 최초의 비구였다. 그 뒤 부처님께서는 야사를 비롯한 60명의 젊은이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았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각 지방으로 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할 것을 이렇게 권유하였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을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그들과 제자 1,000명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왕사성의 종교가를 모두 교화한 이 사건은 국왕과 백성을 놀라게 하였고, 국왕인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다. 특히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우기(雨期) 동안 머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기증했으니 바로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건련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祇園精舍)와 함께 전도의 양대 거점이 되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지 몇 년 후에 고향인 카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의 하나인 아난과 라훌라·아니룻다·우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뒤부터 입멸할 때까지 45년 동안 중인도 지방을 유랑하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재가자, 귀족과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다.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깨달음에는 빈부귀천이 없기 때문이다.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 육신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나는 이미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 끝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너희들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이르셨다.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를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모든 것이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이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말로 ‘불어서 끈다’는 뜻이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 것인가? 바로 욕망과 번뇌의 불을 끄는 것이다. 지혜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것이며, 열반에 이르는 방법은 바로 팔정도(八正道)라 하였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성도를 이루신 그 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이다. 세상에 인연으로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따랐다. 원래 부처님은 업의 굴레에 매인 몸이 아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하여 태어난다거나 죽은 일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나의 육신은 설사 죽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法身)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으리라’말씀하셨다.

결국 부처님의 생애는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길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지닌 불성으로 가능하며 열반은 그 최고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길에서 길로

 

부처님은 어떤 분일까? 부처님은 단순히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신 분이 아니다. 모든 중생을 깨치고자 서원을 세우고 수억 겁을 거듭나며 수행을 닦은 분이다. 그러나 그 분의 이야기는 먼 옛날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 오늘을 사는 발심 수행자의 모습이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상의 영화를 버리시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다. 그 분이 나신 곳은 호화찬란한 구중궁궐이 아니라 먼지 날리는 길가의 동상 위였다. 그래서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신 인류의 위대한 스승, 부처님의 탄생은 그 자체가 중생의 삶에서 함께 하시겠다는 뜻이다.

 

불자는 중생을 위해 일생동안 헌신하셨던 부처님을 기리고 그 삶을 본받아야 한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쉼 없이 정진하는 것, 다른 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닮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의 그늘진 곳,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곳에 동참하여 대비수고(大悲受苦)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불자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