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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四聖諦)

 

고성제 I 집성제 I 멸성제 I 도성제

 

사성제(四聖諦)

 

 

사성제(四聖諦 : Catur-arya-satya)는 고성제(苦聖諦), 고집성제(苦集聖諦), 고멸성제(苦滅聖諦),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의 네 가지 진리를 가리킨다.

 

이 성제(arya-satya)는 ‘성스러운 진리, 깨달음의 진실된 도리’라는 뜻으로 모든 세간의 고를 여의고 깨달음의 이치를 밝혀주는 참으로 성스럽고 진실된 도리라는 의미이다.

이는 석존께서 최초로 하신 설법의 가장 핵심이 되는 기본 사상이었다.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고(苦)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고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 것으로 매우 논리적이며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사성제를 줄여서 고·집·멸·도의 사제라고도 하는데, 우리의 인생은 왜 생사 등의 괴로움이 발생하며 또 어떻게 멸해 갈 수 있는가를 밝혀주는 가장 체계적이고 잘 맞추어진 불타의 근본 가르침이다.

불타께서 성도 후 처음으로 오비구(五比丘) 등을 위하여 녹야원에서 설하신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네 가지 성제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사라짐,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도’의 네 가지가 바로 참 진리이다.”라고 설하며 “무량한 선법이 있으니 일체의 모든 법은 다 사성제에 포함된다. 사성제는 일체 선법을 포함하므로 일체법 중에서 제일이다.”라고 말해질 정도로 사성제는 불타 교설의 대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교설의 참뜻을 파악하는 것은 곧 불타의 근본입장을 명확히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성제는 인생의 고와 그리고 인생이 올바로 살아갈 길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를 분해하여 보면 고와 집의 두 가지는 생사윤회의 고통과 그 원인을 말하고 멸과 도의 두 가지는 모든 유전으로부터 벗어난 무고안온(無苦安穩)의 열반과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행법을 말한 것이다.

 

고제(苦諦) -  자각없는 현실의 고뇌세계, 괴로워하는 상태

집제(集諦) - 현실세계의 원인, 괴로움의 원인

멸제(滅諦) - 자각있는 이상세계,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도제(道諦) - 이상세계의 원인·이유·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

 

사제는 사람들의 고뇌를 치유하기 위한 원리를 설한 것이다.

 

고성제 (苦聖諦)

 

고성제는 괴로움에 관한 진리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현상계의 사실을 괴로움이라고 인정하고 이를 밝혀 나타낸 것이다.

 

괴로움이라는 말의 범어(Duhkha)는 외계와 접촉하는 감각기관을 가리키는 구멍과 나쁘다라는 의미의 합성어로 ‘구멍이 나쁘다.’ 즉 조화가 깨어진 불완전한 상태의 감각기관을 의미한다. 조화가 깨어진 곳에는 항상 마음의 불안, 즉 괴로움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현상계의 모든 일은 다 ‘괴로움’이 된다.

이러한 괴로움은 절대적인 괴로움과 상대적인 괴로움 등 두 가지 모습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 나타난 고에 대한 설명을 보면 “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제인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蘊)은 괴로움이다.”라고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괴로움인 팔고(八苦)에 대하여 설하고 있으며, 혹 고고·괴고·행고의 삼고를 설하기도 한다.

 

현상계의 실상을 바로 볼 때 현실은 불완전한 것이며 더러움과 고뇌가 가득찬 미혹의 세계로 현상의 일체가 다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집성제 (集聖諦)

 

 집성제는 현상계의 괴로움의 원인을 나타낸 것이다.

 

집(集 : Samudaya)은 집기·원인·이유라는 뜻으로 ‘고통을 집기하는 것, 사물이 모여 일어나기 위한 원인’이란 의미이며, 모은다는 뜻은 아니다. 괴로움은 욕망과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며, 이 욕망과 집착은 무지와 무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무지로 인해서 야기되는 인간의 욕망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양, 허망된 것을 참인 양 잘못 집착하여 괴로움을 낳고 있는데, 이 괴로움의 근본은 인간의 내면적 번뇌인 무명과 애욕으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무명과 애욕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에 근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삼독을 떠남으로써 무명과 애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집착을 떠나 바로 열반의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이다.

 

분별성제경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해 갈애하고 하는데, 갈애란 목마른 자가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심한 욕구를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에는 ①감각적 욕구에 대한 갈애인 욕애(欲愛)와 ②유란 존재, 즉 이상향에 태어나고 싶다는 욕구인 유애(有愛)와 ③무유란 비존재, 즉 안주할 곳이 없는 허무계(虛無界)라 하여 구하지 않으려는 갈애인 무유애(無有愛)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멸성제 (滅聖諦)

 

멸성제는 인간의 괴로움의 원인인 무명과 갈애가 다 없어진 무고안온한 열반을 나타낸 것이다. 열반은 모든 탐욕의 다함·성냄의 다함·어리석음의 다함이라고 원시경전은 설하고 있다.

 

모든 번뇌를 다 불러 꺼버린 적정의 자리이며, 모든 고통이 소멸된 이상의 자리이다. 이러한 멸성제의 열반은 결코 이론적으로 논의되고 토론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성제이다.

따라서 끝없는 수행과 쉬임없는 노력으로 모든 번뇌의 속박을 벗어버릴 때 그곳이 바로 괴로움을 떠난 멸성제이다.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에서는 “어떠한 것이 사랑이 사라진 것이며 괴로움이 사라진 성제인가? 중생들에게는 실지로 사랑하는 안(內)의 여섯 곳이 있으니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여섯 곳이니라.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끊어 버리고 모두가 욕을 멸해서 완전히 없애버리면 이것을 이름하여 괴로움이 사라진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도성제 (道聖諦)

 

도성제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참된 진리이며, 진실한 방편이다. 무지와 애욕을 모두 멸해 버리고 탐·진·치 삼독이 사라진 고멸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참다운 방편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편의 길이 도성제이며 불타는 이 길을 중도로 말씀하셨다. 초전법륜에서 “극단적인 고행도 또는 절제없는 방종도 이상 실현을 위한 바른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이변(二邊)을 떠난 중도가 바로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다.”라고 설하셨다. 그러면 이 이변을 떠난 중도는 무엇인가? 바로 팔정도를 가리킨다.

분별성제경에서 “어떠한 것이 괴로움이 사라진 도의 성제인가? 바른 견해(正見)·바른 뜻(正思惟)·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태도(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생각(正念)·바른 선정(正定)이다.”라고 설하고 있으므로, 이 팔정도가 바로 중도며 중도가 바로 도성제임을 알 수 있다.